1. 캘리포니아 호텔, 그리고 와인(1)
Welcome to the Hotel California
Such a lovely place
[Eagles의 노래, Hotel California에서]
미국 여행을 다녀왔다. 지난 월요일 저녁 시간에 인천공항을 출발했다. 5박 6일간의 캘리포니아 여행을 마치고 토요일 오후 5시경에 돌아왔다. 미국은 2005년 10월 다녀온 이후 처음이다. 세월이 빠르다.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4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갔다. 세월을 아껴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느껴본다. 아직은 시차가 완전히 회복이 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기억을 되살려 미국 여정을 기록해 보고자 한다. 먼 훗날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나 혼자만의 기록을 남겨두고 싶어서다.
7월 20일 월요일 저녁 8시에 인천공항에서 대한항공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7월 20일 월요일 오후 4시경(미국 현지시간)에 LA공항에 도착했다. B를 공항에서 만나 자동차를 렌트한 다음 헌팅턴비치까지 갔다. 이번 여행의 주된 목적은 미국에서 B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복장도 편한 상태였고, 휴대품도 별 것이 없었다.
화요일에는 Monterey로 갔다. 수요일에는 Pebble Beach를 둘러보고 1번도로와 101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했다.
목요일에는 Desert Hills Outlet을 다녀왔다. 오후에는 비버리 힐스와 할리우드를 구경했다. 금요일 낮 12시 30분에 LA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다. 짧은 여행이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것을 구경하고, 느끼고 돌아왔다.
캘리포니아는 넓었다. 넓은 땅과 넓은 바다가 있었다. 거친 산들이 있었다. 파란 하늘이 계속되었고, 맑은 공기가 우리와 함께 있었다. 예쁜 꽃들이 많았고, 도심지에서는 낭만과 화려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여행하는 동안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 노래 가사와 리듬을 생각했다. 자동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는 동안 넓은 캘리포니아의 풍경들을 눈에 많이 담으려고 했다.
노래 가사처럼 사막을 달리는 동안에는 열풍이 불어왔다. 땅의 열기 때문에 건물 밖에 오래 있기도 힘이 들었다. 그러나 저녁시간에는 추울 정도였다. 티셔츠를 입고 밖에 있으면 한기가 돌았다.
On a dark desert highway
cool wind in my hair
나무가 별로 보이지 않는 산들 사이로 도로가 나 있었다. 사막의 삭막함이란 숨이 막힐 정도였다. 나무와 숲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비는 절대로 내릴 것 같지 않은 곳이었다. 산의 색깔과 나무와 풀의 색깔은 죽음과 가까웠다. 물이 생명이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물은 그래서 생명이고 사랑이다. Wet의 의미와 Dry의 의미의 차이를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어떤 경우이든 메말라서는 안 된다. 감정도 그렇고 육체도 그렇다. 항상 촉촉한 상태에서 몸과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
여행을 하는 동안 우리는 밤이 되면 하룻밤 머물 곳을 찾아야 했다[We had to stop for the night].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우리의 하룻밤을 모두 맡기고, 그곳에서 잠을 자고, 꿈을 꾸어야 할 곳을 선택해야 했다.시간은 오직 밤뿐이다. 한낮의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덮이기 시작할 때부턴 어둠이 걷히고, 빛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가 어둠을 피하기 위해 숨어야 할 도피처(shelter)였다. 캘리포니아에서는 그래서 어둠이 내리면, ‘캘리포니아 호텔’ 노래를 떠올리면서 모텔을 찾아야 했다.
우리가 그때그때 선택한 모텔은 우리를 실망시키기도 하고, 만족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일단 선택한 모텔은 우리의 것이었다. 비록 하룻밤 머물 곳이었지만, 우리만의 것이었다[This could be heaven or this could be hell].
여행을 하면 사람들은 사랑을 잊어버리게 된다. 사랑의 기억만을 가지고 떠난다. 춤을 출 때 사랑을 떠올리기 위해 추기도 하고, 사랑을 잊어버리기 위해 추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Some dance to remember, some dance to forget].
캘리포니아에서 맞이하는 밤에는 와인을 빼놓을 수 없다. 항상 내 손에는 와인잔이 들려있었다[Please bring me my wine].
나는 화이트와인을 좋아한다. 하얀 잔속에 천천히 부어지는 화이트 와인은 마치 내 가슴속에 진한 사랑을 부어넣는 것같이 느껴졌다. 와인을 마실 때마다 가슴속에도 사랑이 가득 찼다. 와인 때문인지, 사랑 때문인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와인은 곧 그리움으로 변했다. 와인에 취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면 그리움이 사막에서도 눈꽃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2. 캘리포니아 호텔, 그리고 와인(2)
#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낯선 곳에서 며칠이라도 머물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생각을 해야 하고, 그에 따른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이번 여행은 20여일 전에 결정되었다. 주된 목적은 B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B를 보지 못한지도 벌써 2년 6개월이나 되었다. 2007년 1월에 B가 미국으로 간 다음에 한국에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미국으로 가보기로 했다.
먼저 비행기표를 예약해야 했다. 갑자기 시즌에 예약을 하려니 비행기표가 충분하지 않았다. 겨우 예약을 했다. 사전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예약을 하면 시간도 마음대로 정할 수 있고, 요금도 저렴한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다. 국제운전면허증도 신청해서 발급받았다. 나머지는 특별한 준비를 할 필요가 없었다.
출발 당일 사무실에 출근했다. 갑작스러운 상담건이 있어서 점심식사를 하지 못한 채 사무실 일을 정리하고 집으로 향했다. 막상 미국 여행을 하려니 요새 유행하고 있다는 전염병인 신종 플루가 걱정이 되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예방백신을 맞고 가라고 한다. 그래서 내과에 물어보았다. 백신주사는 없다고 했다. 대신 약이 있는데 그것도 예방약은 아니라고 했다.
명일역에서 내려 부근에 있는 내과를 들렀다. 그런 약이 그 부근에는 없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주양쇼핑 부근에 있는 내과에 갔다. 예방을 할 수 있는 약이 아니라, 이상한 증세가 나타나면 복용을 해야 하는 약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약값은 3만원이나 했다. 그것도 겨우 하나가 약국에 남아 있었다. 약을 사서 가지고 갔다.
여행준비를 마치고 택시를 불렀다. 콜택시를 타고 삼성공항터미널로 갔다. 어떤 경우이든 여행은 여행이다. 다소 흥분되기도 한다. 어디론가 떠난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감정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7월의 따가운 햇살이 더욱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한 동안 장맛비가 내렸는데 날씨도 개어서 움직이는데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도심공항터미널에는 3시간 전에 출국절차를 마쳐야 한다. 현장에서 비즈니스로 업그레이들 하려고 했더니 내가 인터넷으로 예약한 비행기표는 업그레이드도 불가능한 표라고 했다. 예약할 때 업그레이드가 가능한지 여부도 알아놓아야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냥 이코노미 클래스로 좌석을 지정받았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는 1인당 편도 1만4천원이다.
공항에 도착하니 2시간이나 남았다. 저녁 시간이라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출국심사를 마치고 안으로 들어가니 2층에 커다란 푸드코트가 있었다. 그전에는 그곳에 그런 식당가가 있는 줄 몰랐다. 간단히 저녁식사를 했다. 비행기를 타고 잠을 자려고 청하를 한병 마셨다. 육개장을 시켜 안주로 했다. 식사 후에 편의점에서 맥주와 차, 생수를 사 가지고 들어가려는데 모두 반입이 금지된다고 해서 몰수되었다. 일체의 액체는 기내에 반입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성수기라 그런지 비행기는 만석이었다. 내가 탄 비행기는 대한항공 KE 002편이었다. 비행기는 저녁 8시에 출발인데 30분 정도 지연되었다. 어떤 승객이 짐을 실어놓고 탑승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짐을 다시 내려놓아야 해서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것이었다.
모처럼 장거리 여행을 하는 것이어서 무척 힘이 들었다. 인천에서 LA까지는 10시간 반이 소요되었다. 좁은 공간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매우 힘이 드는 일이었다. 예전과 달리 요새는 일어나서 뒷부분에 서 있는 것도 못하게 하고 있었다. 단체생활이 힘이 든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여러 사람이 함께 타고 가는 것이므로 질서를 지켜야 한다. 단체가 만들어놓은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개인의 자유는 상당 부분 통제된다.
비행기는 1등석, 비즈니스석, 이코노니석으로 구별해 놓고 있었다. 공간의 차이와 서비스의 차이가 있다. 사회적 구별이 이런 것이다. 누구는 1등석에서 편하게 여행을 하고, 누구는 3등석에서 고생을 하면서 여행을 하는 것이다. 동일한 비행기 내에서 구별된 공간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신분화가 된다. 1등석에 앉아 있으면 웬지 고상해 보이고, 3등석에 앉아 있으면 평범해 보이는 것이 현대 사회의 실상이다.
좌석에 앉아 힘이 든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똑 같이 겪는 일이다. 혼자만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다들 힘이 들지만 참고 견디는 것이다.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다들 인생은 고해와 같기 때문에 누구나 고통을 겪으면서 살아간다.
그 고통을 혼자만이 겪는 것처럼 생각하고, 유별나게 반응하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 자신에게 닥친 고통의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이래서 필요하다. 남들도 다 같이 겪는 고통이라면, 혼자만 억울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러한 고통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는지 유심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3. 캘리포니아 호텔, 그리고 와인(3)
# 불이 꺼진 기내에서는 지루함도 있지만, 때로는 혼자만의 좋은 사색기회가 되기도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이런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오랜 시간 잠겨 있을 수 있다.
비행기가 운항중일 때에는 무려 10시간 넘게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한다. 사람은 움직이는 존재다. 가만히 있기 어려운 존재다. 그런데 꼼짝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10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나는 감방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좁은 공간에서 몇 달씩 보낸다. 때로는 몇 년씩 보낸다. 아무런 소망도 없이, 오히려 끝없는 절망의 늪에 빠져서 헤매고 있다.
비행기를 타고 10시간을 견디면, 곧 해방이고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은 희망이다. 그러나 감방에서 소정의 시간을 보내고 나오면 전과자가 되고 싸늘한 눈초리에 둘러쌓이게 된다. 그것은 지옥이다. 희망의 상실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육체적인 고통을 느낄 때 우리는 더 큰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비행기 좌석에는 개별적으로 화면이 놓여 있고, 각자가 자기 취향대로 영화도 볼 수 있고, 음악도 들을 수 있었다. 과학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나는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들었다. 주로 7080 한국노래를 들었다. 애절한 가사를 음미해 보았다. 가슴을 저미는 가사들이 많았다.
비행기는 미국 현지시간으로 7월 20일 월요일 16:00경 도착하였다. 비행시간은 10시간 30분 정도였다. LA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는데 좌우 열손가락 지문을 모두 찍고, 얼굴 사진도 찍는다. 안경도 벗고 찍어야 했다. 테러 때문에 철저한 공항검색을 해야 하기는 하지만, 그대로 검사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기분이좋지 않았다.
짐을 찾아 가지고 밖으로 나가니 B가 기다리고 있었다. B는 필라델피아에서 비행기를 타고 LA로 온 것이었다. 비행시간이 5시간 반이나 걸렸다고 한다. LA공항에 와서도 3시간이 기다렸다고 한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짐도 두 개나 가지고 왔다.
B가 고생을 하면서 혼자 외롭게 LA까지 온 것을 생각하니 내가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느꼈던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고생, 고통은 그렇게 상대적인 것이었다.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떠올랐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 달렸다. 내 마음이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
B의 얼굴을 보니 반가웠다. 외국에서 만나니 더욱 반가웠다. 함께 순환버스를 타고 자동차 렌트 장소로 갔다. 그린 색의 National 회사였다. 자동차를 렌트하는 모든 절차를 B가 다 했다. 덕분에 나는 편하게 있었다. 네비게이터도 렌트했다.
자동차를 렌트한 다음 공항을 벗어나 Pasadena라는 작은 도시로 갔다. Pasadena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군에 있는 시의 명칭이다. 치페와어로 계곡의 정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은 도시다. 샌게이브리얼 산맥의 샌게이브리얼 계곡에 있으며, 샌퍼스퀄 목장의 일부였다.
1874년 토머스 B. 엘리엇이 인디애나 식민지로 건설했으며, 샌타페이 철도가 들어서면서 겨울 휴양지와 감귤류 주산지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로스앤젤레스와는 약 19킬로미터 떨어진 인구 약 13만 명 규모의 작은 도시다.
Pasadena는 매우 깨끗하고 도시가 아름다웠다. 미국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 아주 작은 규모의 깨끗하고 예쁜 도시를 만나게 된다. 때로는 작은 타운일 수도 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동네에 들어가면 기분이 좋다.
그곳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Twin Palm이라는 레스토랑이었다. 야외식으로 꾸며진 곳에 앉았다. 두 그루의 팜트리가 식당 입구에 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뉴욕스테이크와 생맥주를 시켰다. 너무 맛이 좋았다. 생맥주에 레몬을 올려놓았는데 그것도 좋은 맛이었다.
어두워진 상태에서 Huntington Beach로 갔다. 모텔을 하나 골라들어갔다. 모텔 방에는 에어콘이 없었다. 대신 선풍기가 있었다.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밤이 되니 전혀 덥지 않았다. 그래도 창문을 열어놓고 잠을 자야 했다. 밤에는 아무 것도 볼 것이 없었다. 그냥 모텔에서 답답하게 밤을 지내야 했다. 주변은 캄캄하고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밤에는 밖에 나갈 엄두도 못냈다.
4. 캘리포니아 호텔, 그리고 와인(4)
# 헌팅턴 비치에서는 세계 최대의 서핑 축제인 제50회 U.S. 오픈 서핑대회(The Hurley US Open of Surfing)가 열리고 있었다. 7월 18일부터 시작되어 7월 26일까지 열린다고 한다. 헌팅턴 비치는 캘리포니아 남쪽 태평양 연안에 있는 작은 도시다. 매우 아름다운 서프 시티(Surf City)다.
7월 21일 화요일 아침 눈을 뜨니 환한 햇살이 들어왔다. 미국에서 첫날밤을 지낸 것이다. 간밤에는 시차 때문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한밤중에 눈이 떠졌는데 밖에는 어두워서 나가지 못하고 그냥 뒤척였다. 미국 여행을 하면 느끼는 것은 낮에는 참 좋은데 밤에는 무섭고 활동하기가 힘이 든다. 혼자 잘 때는 잠이 안 오면 그냥 TV도 틀어놓고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B가 있어 그럴 수도 없었다.
아침에 밖을 나오니 눈이 부실 정도로 햇살이 강했다. 푸른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바다는 어느 곳에서 만나든지 우리를 감격케 만든다. 바다와 마주 서서 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저 넓은 바다는 태평양이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 앞에서 나는 내 존재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헌팅턴 비치였다. 많은 사람들이 파도를 타고 있었다. 서핑보드를 가지고 파도 위에서 즐겁게 놀고 있었다. 많은 비키니 차림의 사람들이 선탠을 하고 있었다. 해변의 규모가 대단했다.
마침 U.S. 오픈 서핑대회가 열리고 있어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사실 우리는 이곳에서 이런 대회가 열리는 사실을 모르고 갔다. 그냥 비치에 가보니 대회를 하고 있었다. 운이 좋았다. 이 대회는 헌팅턴 비치시 창설 100주년을 기념해서 열렸다고 한다. 세계 각국에서 서핑 선수들이 참가하고 있는 대회다. 헌팅턴 비치는 4마일에 이르는 해변에 몰려오는 파도를 탈 수 있는 곳이다.
백사장을 한참 동안 걸었다. 구경을 마치고 차를 탔다. 헌팅턴 비치에서 나와 샤브샤브집으로 갔다. 그곳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캘리포니아의 하늘은 무척 파란색이었다. 구름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파란색의 하늘이 보였다.
헌팅턴 비치에서 몬터레이로 갔다. 가는 길이 넓은 평원지대였다. 광활한 토지에 어떤 과일나무를 심어놓았다. 캘리포니아가 얼마나 넓은 곳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몬터레이 가는 길이 너무 삭막해서 도중에 돌아 나왔다가 다시 그 길로 갔다. 나무가 없는 산들 사이로 길이 나있었다.
헌팅턴 비치에서 몬터레이까지는 먼 길이었다. 몬터레이에 도착하니 벌써 10시가 다 되었다. 가까스로 어느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했다. 바닷가에 붙어 있는 식당이었다. 그리고 부근에 있는 베스트 웨스턴 모텔을 잡고 들어갔다.
5. 캘리포니아 호텔, 그리고 와인(5)
# 페블비치는 Monterey에서 Camel로 이어지는 17마일 드라이브 내부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미국에서 유명한 골프장인 Pebble Beach, Spyglass, Links at Spanish Bay 등이 있는 골프명소라고 할 수 있다.
7월 22일 수요일, 오전에 몬터레이에서 페블비치로 갔다. 17마일드라이브 길을 따라 가면서 구경을 했다. 페블비치에서 내려 바닷가를 걸었다. 정말 아름다웠다. 페블비치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바닷가 식당에서 핏자와 스파케티를 시켰는데 맛이 없는 편이었다.
오후에는 1번 도로와 101번 도로를 따라 LA로 갔다. 해변도로를 따라 간 것이다. 너무 아름다운 해변이었다. 가다가 중간 중간에 쉬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였다. 도중에 솔뱅이라는 도시를 들렀다. 덴마크 스타일의 작은 타운이었다. 시간이 늦어 대부분 상가는 문을 닫은 상태였다. 밖에서 차를 타고 둘러보고 그냥 나왔다.
어두운 길을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경찰차가 우리 차를 세운다. 이유는 우리 차가 비틀거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네비게이터를 보다가 그랬다고 해명했더니 그냥 가라고 한다.
밤 11시가 다 되어 LA에 있는 한인타운으로 갔다. 대부분의 식당들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24시간 하는 식당을 찾았다. 그곳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그랜드호텔에서 잠을 잤다.
# 디저트 힐스 아울렛은 삭막한 외곽에 만들어놓은 아울렛매장이다.
7월 23일 목요일 오전에 호텔에서 나와 디저트 힐스 아울렛 매장으로 갔다. 구경을 하러 간 것이다. 수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곳에서 3시간 가량 머물렀다.
오후에 비버리 힐스를 구경갔다. City of Beverly Hills 라는 작은 구역은 유명 연예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고급 주택들이 들어서 있는 곳이다. 그곳에는 Will Rogers Memorial Park 이 있다. 비버리 힐스 그룹 투어는 1인당 100불 가까이 한다. 2시간 관광코스라고 한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관광코스를 보고 있었다. 비버리 힐스 동네 입구에서는 어떤 여자가 연예인들의 집 지도를 팔고 있었다. 한 장에 10불이나 한다.
할리우드 거리를 돌아다녔다. 구경을 마치고 저녁 식사는 한인타운에 있는 일식당에서 했다. 저녁 식사 후에 공항 부근에 있는 베스트 웨스턴 모텔로 들어갔다.
7월 24일 금요일 오전에 공항으로 갔다. B는 다시 필라델피아로 돌아가고 우리는 인천공항으로 돌아왔다. 인천에 도착하니 오후 5시가 조금 넘었다.
6. 아버지와 아들(Father and Son)
사람은 누구나 부모의 노고로 출생하고, 양육되며, 교육을 받고, 성장하게 된다. 부모와 형제로써 가족이 구성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가족 구성원 상호 간에 각자 어떤 역할을 하여야 하는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고 불행이 초래된다.
서로에게 감사를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각자 지켜야 할 의무가 있고, 서로 사랑하고 보호해야 할 책임도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것이다. 누가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대로 가정교육을 받을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들 먹고 살기 바쁘고, 자기 할 일에 쫓기다 보면 전체로서의 가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녀에 대한 아주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면서 높은 수준을 기대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최고가 되기를 바란다. 시간을 아
끼며 꼭 필요한 일만 하기 바란다. 흐트러지지 않고, 바른 생활만 하기를 원한다. 여기에 미치지 못하면 혼을 내주고, 사람 취급을 하지 않고, 사랑을 베풀지 않는다.
돈만 대주고, 밥만 먹여주고, 그 다음 자녀들은 공부만 열심히 하고 성적만 좋으면 된다. 따뜻한 대화도 서로 나누지 않는다. 각자 TV를 보고, 아버지는 술을 먹고 늦게 들어와도, 자녀는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자식은 기계가 아니다. 사람이다. 학교생활에 적응하기도 힘이 들고, 주변 환경이 공부에 전념하게 놔두는 것도 아니다. 열심히 해도 성적이 제 마음대로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런 자녀를 구박하고 냉대하는 것은 커다란 잘못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부모와 자식 사이는 자꾸 멀어진다. 서로가 바라보는 시각에 너무나 커다란 차이가 있다. 아이는 아이대로 실망하고 삐뚤어진다. 부모는 부모대로 실망하고 애정을 주지 않는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이렇게 성장한 한 아들이 아빠에게 편지를 보냈다.
“어릴 때부터 아빠는 두려운 존재였어요. 그것은 조금만 잘못해도 아빠가 나를 정말로 버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우리 가정의 가장 큰 문제는 서로에게 대한 신뢰가 다른 가정에 비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에요. 신뢰한다는 것은 가족 중에 누가 잘못을 했을 때나 힘든 상황이 생겼을 때 상대방이 그곳에 끝까지 있어 줄 것이라는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러한 믿음은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것은 아니고, 사랑과 인내를 가지고 꾸준히 노력해야 생기는 것이에요. 누가 한번 잘못했다고 등을 돌리고 떠나는 것은 남들끼리 하는 일이지, 가족이라는 것은 남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서로 의지하고 보루가 되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내가 어렸을 때에 아빠와의 사이에서 서로가 상처를 주고받았다는 것을 아빠도 잘 알고 있으리라고 믿어요. 아빠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내 성격에 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런지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러한 원인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아빠에게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당당하게 아빠와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그로 인해 열등감과 낮은 자존심이 생겨 그랬다는 것을 점차 알게 되었어요. 그렇지만 아빠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싶은 마음은 이제 없어졌어요. 나도 성인이 되었고, 크리스챤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지금도 가끔 아빠가 다른 아빠들과 달리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면, 나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그 안에서 내 모습이 보이고, 미래의 나도 저럴까 안타깝고 불안해져요. 나도 아빠 아들이니까 아빠 성격을 많이 닮았다고 생각해요.
가까운 사람들이 나에게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그 사람들과의 관계도 끝내 버리고, 나를 위해서 다른 사람들이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불편하고 거북한 상황이 생기면 현실에서 도피해 버리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지만,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어요.
그런 것을 고치지 않고서는 내가 원하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앞으로 우리는 가족이니까 서로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어도,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어도, 서로 회피하지 말고 대화하고 인내하고 사랑으로 받아주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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