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0)

 

경찰서 담당 조사관은 처음부터 3자 대질조사를 시작했다. 일단 국홍만 피의자로 간주하고 조사를 했다.

“최스텔라 씨는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말해보세요.”

 

“예. 저는 어제 저녁에 처음으로 술집에 출근했어요. 하루하루 출근해서 시간급으로 계산해서 일을 하기로 하고, 술집에서 홀에서 서빙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손님 일행이 세명이었는데, 테이블에 저를 앉으라고 해서 하는 수 없이 손님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술을 따르라고 해서 술을 따라주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술을 마시라고 해서 맥주 세잔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른 손님이 들어오기에 테이블에서 일어나려고 했더니, 제 옆에 앉아 있던 남자 손님이 제 팔을 붙잡고 못일어서게 하면서 다시 테이블에 앉혔습니다. 그리고 제 치마 위로 가운데 부위에 그 손님이 손을 올려놓고 누르기에 기분이 나빠서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그랬더니 그 손님은 갑자기 저에게 싸가지 없는 년이라고 욕을 하면서 술병을 바닥에 던져 산산조각이 나게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갑자기 뺨을 서너 차례 세게 때렸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멍이 들어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당시 술집 사장님은 밖에 나가 있다가 손님들이 행패를 부린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돌아왔는데, 다른 종업원들이 사고 경위를 설명해주었더니, 그 사람들이 오래 된 단골손님들이고, 매상을 많이 올려주는 사람들인데, 큰일 났다고 하면서 무척 속상해 했습니다. 저도 그런 사장님의 모습을 보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사장님은 저에게는 별로 탓하거나 잘못했다고 하는 말을 일체 하지 않고,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영업이 끝날 시간에 다른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저는 미안해서 끝까지 남아 사장님 퇴근할 때까지 있으려고 했습니다.”

 

“그런 다음 어떤 문제가 생겼나요?”

“사장님은 속이 상해서 저에게 이야기 좀 하자고 했고, 저도 미안한 마음에서 사장님과 단 둘이 맥주를 마셨습니다. 그런데 술이 취해서 그랬는지, 갑자기 저를 만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장님을 밀쳤더니 사장님은 저를 쇼파에 강제로 눕히고 내의를 벗긴 다음 그짓을 했습니다.”

 

옆에서 조사내용을 듣고 있던 정확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국홍을 때리려고 했다.

“이런 나쁜 놈! 당신이 강제로 했다는 말이지!”

조사관은 정확을 말리며, 잠깐 조사실에서 밖으로 나가 있으라고 했다. 조사관은 국홍에게 물었다.

 

“지금 이 여자가 진술한 내용이 모두 사실인가요?”

“아닙니다. 거짓말입니다. 저는 강제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이 여자가 동의해서 성관계를 했다는 말인가요?”

“동의를 했다는 말이 아니라, 당시 둘이서 술을 마시다가 제가 이 여자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아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여자를 손으로 만졌는데도 별로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자의 가슴을 만지고, 자연스럽게 쇼파에서 성관계를 시도했는데, 여자가 별로 반항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서 간단하게 관계를 하고 끝을 냈습니다. 그리고 여자가 성관계 도중에 더 하고 싶었는지, 저를 껴안고 제가 빨리 끝내자 매우 아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쨌든 젊은 아가씨와 관계를 했기 때문에 차비를 하라고 현금 20만원을 주었습니다. 아가씨는 고맙다고 하면서 돈을 받았고, 저를 원망하거나 문제삼을 태도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아가씨 남자 친구가 갑자기 나타나서 저와 싸움이 되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국홍과 스텔라의 진술이 100% 상반되자, 수사관은 매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스텔라 씨는 이 남자의 진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요?”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사장님이 제 옆으로 자리를 옮겨 저를 만지고 있을 때부터 저는 하지 말라고 거부했습니다. 그런데도 사장님은 저를 쇼파에 눕히고, 강제로 했습니다. 다만, 저는 죽기살기로 반항은 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술에 취한 상태였고, 사장님이 저를때리지 않고 그냥 막무가내식으로 밀어붙였기 때문에 반항을 포기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스텔라 씨는 강압적으로 강간을 당한 것은 아니라는 뜻인가요?”

“아니지요. 제가 적극적으로 반항은 하지 않았지만, 저는 하지 말라는 의사표시를 분명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첫출근은 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자로서 무엇 때문에 나이 먹은 사장님과 그짓을 좋아서 승낙하고 했겠습니까?”

 

“피해자는 이 사람의 처벌을 원하는가요?”

“물론입니다. 처벌해 주시기 바랍니다.”

 

경찰관은 국홍의 말은 귀담아듣지 않고, 스텔라가 진술하는대로 조서를 작성했다. 그런 다음, 정확을 불러서 서로 싸운 경위를 조사했다. 정확은 자신의 여자 친구를 강간했기 때문에 화가 나서 폭행을 한 것이고, 쌍방폭행이라고 주장했다. 국홍은 정확이 갑자기 술집으로 와서 여자 친구가 강간 당한 것으로 오해를 하면서 자신에게 폭행을 가했기 때문에 같이 싸우게 된 것이며, 국홍은 술에 많이 취해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일방적으로 많이 맞았다고 진술했다. 그러면서 정확을 상해죄로 처벌해달라고 진술했다.

 

조사를 다 마치니, 새벽 5시가 다 되었다. 경찰은 스텔라와 정확은 일단 돌아가라고 했다. 그리고 국홍은 경찰서에서 대기하라고 했다. 구속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대기실에서 핸드폰을 보니, 집에서 수많은 전화가 부재중으로 와있었다. 그리고 부인 복자가 많은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여보! 당신 왜 그래?” “왜 전화도 안 받고, 밖에서 뭐하고 있어?”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다른 여자와 같이 있는 거지? 세상에 이럴 수 있어? 내가 몸이 아픈 걸 알면서도 밖에서 외박을 해?” 이런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계속해서 보내고 있었다.

 

국홍은 술이 깨면서 아차 싶었다. 사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혹시 내가 곧 바로 구속되는 것은 아닐까? 조사관이 내가 말하는 것을 믿어주는 것처럼 보였는데, 잘 하면 무혐의로 풀려날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런데 그 여자와 남자 친구는 돌려보내고 나만, 붙잡아놓은 것은 아무래도 나를 구속하려는 것 아닐까?’

 

국홍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되었다.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면서 집에서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기다리고 있는 아내의 불쌍한 얼굴이 떠올라서 미칠 것 같았다.

 

‘복자는 이 세상에서 오직 나 하나만을 믿고 살고 있는데, 만일 복자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아마 복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이다.’ 똑 같이 고아로서 같은 고아원에서 고생을 하면서 외롭게 살았다. 하지만 두사람은 이를 악물고 열심히 험한 세상을 헤쳐나왔다. 그리고 서로 뜨겁게 사랑하고 있다.

 

또한 이제 술집이 손님도 많아졌고, 제대로 자리를 잡아서 경제적으로도 아무런 걱정이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막 행복이라는 작은 새가 품안에 들어왔는데, 이럴 때 국홍이 술을 마시고 순간적인 실수를 해서, 복자의 가슴에 못을 박고, 모든 행복이 산산조각 날 상황이 되었다. 국홍은 죽고 싶었다.

 

경찰서 대기실 벽에 머리를 세게 박아서 뇌진탕으로 세상을 떠나고 싶었다. 만일 거꾸로 복자가 국홍을 두고 다른 여자와 성관계를 가졌다면, 아마 국홍은 복자를 죽였을 것이었다. 국홍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말똥같은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상하게 눈물이 무척 뜨거웠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국홍은 화장실을 다녀온다고 하면서 밖으로 도망갈 궁리를 했다. 하지만 화장실까지 경찰관이 따라오고 있었다.

 

도망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가끔 영화에서 보았던 교도소 탈주범이나, 호송차를 타고 가다가 집단탈출할 사건을 뉴스에서 보았지만, 막상 현실적으로 경찰서에 붙잡혀 있으니, 비록 수갑을 차거나 포승줄에 묶여 있는 것은 아니었어도 건장한 경찰관을 따돌리고 경찰서 밖으로 도주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소설 속의 공허한 이야기에 불과했다.

 

“경찰관님! 저는 언제 집에 갈 수 있나요? 집사람 걱정 되어서 미치겠어요? 저는 구속되는 건가요?”

“글쎄요. 우리는 조사만 했지, 구속 여부는 검찰청에서 결정하는 거예요. 일단 기다려봐요. 너무 걱정은 하지 말아요. 그런데 걱정되면 부인에게 전화로 연락하지 그래요?”

 

경찰관은 남의 일이라 매우 담담한 표정으로 건조하게 대답했다. 국홍은 정말 강간죄로 구속되고, 아내가 알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술집은 어떻게 해야 하나?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날라가버린 것이었다.

 

마치 일본 관동지방에서 2011년 3월 발생했던대규모 강진에 쓰나미 때문에 수만명이 목숨을 잃은 것처럼, 국홍과 복자, 술집은 어제 밤 한 순간의 실수로 산산조각이 나고, 두 사람의 아름다운 둥지는 나뭇가지에서 아래로 추락해서 박살이 난 것이었다.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 변호사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조사관이 지나가는 말로 말해주었지만, 당시 국혼은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조사관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중에 피의자신문조서를 읽어보라고 했을 때도, 글자색깔이 까많고, 조서는 하얗다는 것만 떠오를 뿐 조서 내용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작은 운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운명 (12)  (0) 2020.03.30
작은 운명 (11)  (0) 2020.03.26
작은 운명 (9)  (0) 2020.03.24
작은 운명 (8)  (0) 2020.03.23
작은 운명 (7)  (0) 2020.03.2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