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85) 주유소 사장의 가수 나훈아 사랑
정줄래 양은 비록 서른살이 될 때까지 아직 가수로서 데뷔도 하지 못했고, 음반을 내지도 못했지만, 꿈은 버리지 않았다. 줄래의 입장은 아직 작곡가를 만나볼 기회도 없었고, 그럴 돈도 없었다. 대형기획사 오디션에 응모는 해봤지만, 아직은 시간 낭비였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가수 데뷔 나이가 어려졌다. 나이 먹으면 <트롯>가수를 뽑는 TV프로도 있었지만, 줄래는 그런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무슨 노래를 어떻게 불러야 가수가 될 수 있는지 조차도 아무런 개념이 없었다.
다만, 본인이 워낙 노래를 좋아하고, 주변에서 몇 사람이 음성이 좋고, 듣기 좋다고 하니까 자신감을 강하게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줄래는 다방 생활을 하면서도 틈만 나면 노래방에 가서 혼자 연습을 했다.
한번 시간을 내서 노래방에 가면, 최하 3시간씩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300곡은 자막을 보지 않고, 2절까지 가사를 글자 한자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외웠다. 일본 노래는 대개 3절까지 있는데, 우리나라 노래는 2절에서 그치는 것이 아쉬웠다.
신세대노래는 너무 가사가 길고, 영어도 섞여있어서 외위기가 힘이 들었다. 옛날 가수들 노래는 노래 가사에 애절한 사연이 있고, 전하려는 메시지가 뚜렷한 데 비해서 최근 가요는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가 불분명했다.
그냥, <너를 사랑해> <네가 좋아 미치겠어> <너 없인 못 살아> <캔세라 세라> 이런 식이었다. 대개 빠른 리듬이고, 힙합이나 랩 같은 경쾌한 음악이었다. 옛날에는 가수의 목소리와 음색 하나만 가지고 승부를 봤는데, 요새는 그룹으로 뛰거나 날씬한 몸매, 성형수술로 다진 얼굴, 비싼 돈을 들인 무용이나 율동을 배워야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줄래가 자주 노래방을 다니다 보니까 노래방 주인도 줄래가 무엇 때문에 노래방을 자주 오는지 알게 되었고, 다방에서 근무를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아주 좋게 봤다. 그래서 노래방 주인은 줄래가 오면, 돈도 깎아주었다.
그리고 음료수도 공짜로 주었다. 그 지역에서 주유소를 크게 하고 있는 예순살 먹은 사장이 있었는데, 그 사장은 노래방 주인으로부터 줄래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한번은 줄래를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그 사장 역시 그 노래방 단골손님이었다.
<기름 펄펄>주유소 최유전 사장(60세, 가명)도 젊었을 때 가수가 되려는 것이 꿈이었다. 최유전 사장은 특히 가수 나훈아의 열광적인 팬이었다. 최 사장은 나훈아를 알고부터는 오직 나훈아 노래만 들었다. 당시 나훈아와 라이벌이던 남진 노래는 절대 듣지 않았다.
만일 라디오를 켰는데, 남진 노래가 나오면 재빨리 라디오를 껐다. 한번은 잘 꺼지지 않자, 화간 난 최 사장은 라디오를 발로 차서 부셔버렸다. 최 사장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할 때부터 나훈아의 노래에 심취해서 빠졌다.
그는 나훈아가 발표한 모든 곡을 노트에 일일이 가사를 적었다. 당시 돈이 없어 레코드판은 사지 못했다. 나중에 카셋트가 나오고 대중화가 되자 그때부터는 카셋트를 사서 모았다.
최 사장은 나훈아 노래는 신곡이 발표되면, 마치 자신이 군대에서 한 계급씩 승진한 것 이상으로 좋아하고 행복해했다. 가슴이 떨렸다. 며칠씩 잠을 못자고 나훈아 사진을 껴안고 있었다. 당시 노래방이 없을 때에는 가사를 적어가지고 산에 올라가서 혼자 큰소리로 나훈아의 노래를 따라불렀다.
아주 애절한 부분에서는 일부러 눈물도 흘렸다. <바보 같은 사나이> <해변의 여인> <찻집의 고독> <사나이 눈물> <머나 먼 고향> <청춘을 돌려다오> <잊을 수가 있을까> 같은 노래를 듣고 있을 때에는 최 사장은 나훈아의 노래를 연속으로 듣다가 심장마비가 되어 그대로 죽으면 너무 행복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최 사장이 그렇게 열심히 나훈아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나훈아를 신처럼 모시고, <사이비종교> 교주처럼 떠받들고 지내다 보니, 점점 시간이 가면서 목소리나 음색도 나훈아와 똑 같이 되었고, 특히 얼굴 모습이 나훈아와 쌍둥이로 오인될 정도로 변했다.
최 사장의 키는 원래 나훈아보다 3센치미터가 컸는데, 몇 년이 지나다 보니, 최 사장의 키가 3센치미터 줄어들어서 키도 나훈아와 똑 같이 되었다. 사람들은 기적이라도 했다.
원래 전해 내려오는 속설로는 사람이 보신탕을 많이 먹으면 얼굴이 개와 비슷해지고, 개기름이 낀다고 한다. 또 소도축장에서 오래 일을 하다 보면, 얼굴이 소를 닮아간다고 한다. 뱀탕을 오래 먹으면 눈도 뱀눈깔처럼 변하고, 특히 혀가 뱀처럼 길어지고 자주 밖으로 나온다고 한다.
동굴속에서 쥐와 같이 10년을 살면 그 사람의 꼬리뼈가 발달하여 가는 꼬리가 15센치미터 밖으로 나온다는 속설이 있다. 남자가 여자 사기를 많이 치면 물찬 제비처럼 몸매가 좋아지고, 제비와 같이 날렵하게 도망을 다닌다고 한다.
아무튼 주변 사람들은 최 사장이 점점 시간이 갈수록 나훈아처럼 변해가는 것을 보고 나훈아 모창가수가 되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렇게 해볼까 고민하고 있는데, 어느 날 TV를 보니 <너훈아>라는 가수가 노래를 하고 있었다. 최 사장은 그것을 보는 순간 기절할 뻔했다. 자기 자신이 TV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잘못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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