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87) 최유전과 나훈아 피습사건
<기름 펄펄> 주유소를 운영하는 최유전 사장은 그 할머니 때문에 더 이상의 동네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하던 야간매복작전은 더 이상 수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훈아 모창가수사건 때문에 서울까지 올라가서 방송국 앞에서 항의 1인시위를 하려는 경운기사건도 포기하고 말았다.
현실의 벽은 너무 높았다. 세상이 너무 거꾸로 잘못되어 돌아가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대신 청와대에 국민청원게시판에 이 문제에 대해 장문의 글을 올렸으나, 한달이 지나도록 청원에 참여하는 사람은 전국에서 모두 7명밖에 안 되었다.
그 7명도 모두 최 사장이 단골로 다니는, <울지마>노래방 고정 멤버였다. 최 사장은 이런 나라에서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외국으로 이민을 떠날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선뜻 외국에 나가서는 나훈아 가수를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민 가는 것은 결국 죽임이라고 단정내리고 포기했다.
이렇게 고통을 받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 새로운 종교단체에 같이 가서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자고 인도했다. 곧 지구의 종말이 오는데, 이 단체에 들어가서 열성신도가 되면, 종말 때 죽지 않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최 사장은 그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종말 때 죽고 사는 것은 문제가 아니고, 나훈아 음악을 계속 들을 수 있고, 내가 나훈아 노래를 음정 박자 틀리지 않고 잘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해요. 그리고 만일 나는 구원을 받아 살아도, 나훈아가 구원을 받지 못하면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이 문제를 보증해 주세요.“라고 애원했다.
그랬더니 그 전도사는, ”나훈아가 누구예요? 천국에서는 그런 트롯트 가수는 명함도 내밀 수 없어요. 찬송가를 불러야 해요. 천국에서는 찬송가 이외에는 19금이라고 들었어요. 군가도 허용되지 않아요. 오직 찬송가와 동요만 가능해요. 그리고 지구에 종말이 오는데, 그깐 나훈아나 너훈아가 뭐 중요해요. <나살아>나 <나좋아>가 가장 중요한 거예요.“
결국 최 사장은 당시 나이가 서른 살이었는데, 나훈아 때문에 천국 가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면서 더욱 나훈아 노래에 24시간 매진했다.
특히 나훈아의 슬픈 이별의 노래는 감정이입을 극대화시키기 위하여 동네 뒷산 산소 있는 곳의 소나무 밑에서 밤 12시에 눈물을 흘리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 노래가 끝날 무렵 저쪽에서 나훈아가 하얀 옷을 걸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최 사장을 물끄러미,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최 사장은 신문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나훈아가 서울시민회관에서 리사이틀 공연을 하고 있는 중에 어떤 괴한이 무대에 뛰어올라 깨진 사이다 병 파편으로 나훈아를 공격하였다.
이런 기습적인 습격으로 나훈아는 왼쪽 얼굴에 5cm 가량의 큰 부상을 입었고 72바늘을 꿰매는 대수술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최 사장은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는데, 나훈아 피습사건을 보고 2시간 동안 큰소리를 내면서 통곡을 했다.
반경 500미터까지 최 사장의 통곡소리가 나서 주민들은 대통령이 총탄에 맞은 줄 알았다. 아니면 최 사장이 갑자기 돌아서, <전국울음경연대회>에 나가서 최우수상을 받은 것으로 알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나훈아가 부상을 당해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빠진 최 사장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급히 배낭에 필요한 물건을 담고, 새벽 6시에 출발하는 첫 번째 고속버스를 탔다.
우선 나훈아를 테러한 범인을 체포하는 것이 급선무였고, 나훈아를 살리는 것과 나훈아의 음성을 동일하게 보전하는 것이 중요한 임무였다. 서울에 도착한 최 사장은 물어물어 서울시민회관을 찾아갔다.
문도 다 닫혀있고, 나훈아도 없고, 테러범도 없었다. 이 문, 저 문을 세게 두들려도, 아무도 없었다. 오른쪽 손등에서는 너무 세게 두드려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부근 파출소 가서 물어보니, 나훈아는 병원에 입원했고, 범인은 구속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파출소 순경은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그런 걸 묻느냐고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최 사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를 악물고 인상을 쓰면서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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