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88) 종로거리를 뛰는 도승지
아무 소득 없이 파출소를 나온 최유전은 배낭을 매고, 광화문거리를 걸었다. 이순신 동상이 보였다. 칼을 차고 서 있었다. 1592년 일본군에 의해 서울이 점령되어 아우성치던 모습이 선하게 떠올랐다.
당시 한양에서 살던 사람들은 조선에서는 최상위층이었을 것이다. 선조왕을 받들면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 있었을 거이다. 조선이 건국된 이래 200여년이 지날 때까지 어떤 의미에서는 태평성대를 보내고 있었다.
한양에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조선 8도를 호령하는 절대군주 왕이 있고, 왕을 지키는 수비대가 막강한 이곳에서 외국 군대가 침략하여 왕이 한양에서 다른 곳으로 도망가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절대로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중국 같은 대국에서 전쟁을 일으킬 수는 있었도, 일본 같은 별 것 아닌 조선보다 못한 나라로부터 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특별한 예고 없이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이라기 보다는 일방적인 공격이었다. 그런데 1592년 4월, 길고 추웠던 겨울을 보내고 대지에는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고, 만물이 기지개를 펴고, 농민들은 농사일을 시작하는 그 좋은 봄날, 일본군이 먼 바다를 건너와서 조선의 영토를 짓밟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조선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일본군 육군의 정규 병력은 15만 8700명이었고, 수군(水軍)도 9,000명이나 되었다. 일본군 고니시가 인솔한 제1번대는 병선 700여척을 타고 1592년 4월 14일 오후 5시 부산 앞바다에 도착하였다.
이후 7년 동안이나 전쟁은 이어졌고, 1598년 8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병사하자 일본군의 철수도 전쟁은 막을 내렸다.
최유전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생각하니 공연히 기분이 우울해졌다. 종로경찰서까지 걸어가서 유전은 나훈아사건에 관해 물었다. 경찰서에서는 유전이 그 사건과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고, 신문사 기자고 아니고, 변호사도 아니기 때문에 사건에 관해서 어떤 내용도 알려줄 수 없다고 말하며 밖으로 내쫓았다.
유전은, “저는 나훈아 황제님을 지켜야 하는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난 최유전입니다. 그리고 제2의 나훈아를 꿈꾸고 있는 가수지망생입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나이 든 경찰관은 최유전이 깊은 산속에서 도를 닦고 있다가 갑자기 서울 구경을 온 김에 그냥 돌아가기는 심심하니까, 같은 도인들에게 서울 가서 이런 쇼킹한 사건에 대해 말할 거리를 만들려고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나훈아씨는 지금 OO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그곳에 가서 물어보세요.”
유전은 나훈아가 입원해 있는 병원까지 시속 15킬로미터로 뛰어갔다. 인도로 뛰다가는 너무 늦을 것 같아서 차도 끝부분으로 뛰었다. 유전의 바로 옆으로 택배하는 오토바이가 수십대 지나갔다.
유전은 생명의 위험을 느끼면서도 워낙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죽을 힘을 다해서 뛰었다. 도중에 지쳐서 목이 무척 마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까운 시간에 마트에 가서 생수를 살 여유는 없었다.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도로 반대편에서 어떤 유명한 정치인이 마라톤을 하고 있었다. 머리에 띠를 두르고, 맨 선두에 서서 꽤 빠른 걸음으로 뛰고 있었다. 무척 유명한 사람인 모양이었다.
서울에서 뛰니까, 옛날 조선시대 선조 때 같으면, 아마 높은 정승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유전이 생각하기에는 조선 시대에는 한양성 안에서 마라톤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왕도 뛰지 않는데, 왕이 아닌 벼슬아치가 건강에 좋다고 4대문 안에서 쿵쿵거리며 긴 한복을 입고 뛰고 있으면(한복에 걸려 자주 넘어지기는 했다), 가까운 궁궐에서 젊은 후궁을 껴안고 재미를 보고 있는 왕이 혹시 복상사를 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즉시 포도대장이 그 뛰는 놈을 붙잡아서 국문을 했을 것이다.
“네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뛰고 있느냐? 임금님께서 놀라서 돌아가시게 하려는 네놈은 역적죄에 해당한다. 역적을 하는 동기는 무엇이냐? 그리고 함께 반역하는 공범들을 모두 불어라!”
혼자 잘난 척하고 뛰던 사람은 왕명을 출납하던 승정원(承政院)의 정3품 관직인 도승지였다. “나는 도승지요. 사람을 잘못 보고 아무 잘못도 없는 나를 체포하고, 역적으로 몰고 있는 당신은 이제 앞날이 보이지 않을 거요. 빨리 잘못을 뉘우치고 나에게 무릎을 끓고 사과하시오.”
그러나 포도대장은 이 못생긴 놈이 도승지를 사칭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계속해서 국문을 했다. 너무 심하게 국문하다가 도승지는 의식을 잃었고,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 나중에 이 사건이 문제가 되자, 포도대장은 도승지가 역적을 도모했다고 자백을 했다고 허위보고하고 사건을 종결지었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180도 달라졌다.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은 정작 종로거리를 뛰지 못하는데, 그보다 못한 정치인은 자동차가 다니는 길을 가로막고 마라톤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말로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몇 사람이 교통을 방해하면서 번화한 도로를 뛴다고 갑자기 나라를 위기에서 구출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이 과연 우리나라가 위기인가 궁금했다.
정말 위기에 닥치면 같이 전투에서 싸움을 해야지, 6.25 전쟁 때 북한군이 서울을 침공해 오는데, 총을 들고 같이 싸우지 않고, 혼자서 종로거리를 뛰면서 나라를 위해서 뛰는 거라고 외치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사람은 전쟁방해죄로 처벌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지금 유전이 종로거리를 뛰고 있는 것은 그런 정치인이나 유명인사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유전은 대한민국의 트롯트 황제를 구출하기 위해 뛰고 있는 것이다.
조선 시대 왕이야 수십명이고, 그 이전의 고려시대, 삼국시대 까지 따지면 너무 많아 이름을 다 외울 수도 없고, 외울 필요도 없는 왕이나 대군(폐위된 사람도 있다)과는 비교가 안 되는 5천년 역사 가운데 유일한 트롯트<황제>였다.
황제라는 칭호는 함부로 붙이는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에서도 황제는 유일하게 고종황제뿐이었다. 로마황제 정도 되어야 황제라는 칭호를 공식적으로 쓸 수 있는데, 유전이 신봉하는 나훈아는 그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황제>였다.
비록 아직까지 기네스북에는 <트롯트황제>라고 올라가지는 않았지만, 대한민국과 아시아국가에서 나훈아가 <트롯트황제>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부인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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