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89) 최유전이 7살 연상의 여인을 만나다

 

최유전은 2시간 동안 조금도 쉬지 않고 열심히 달려서 경찰관이 알려준 대학병원으로 갔다. 입구에서, “나훈아 황제님 입원해 있는 병실이 어딥니까?”라고 물었다. 어떤 사람이, “저쪽 뒤로 돌아서 맨 끝에 있는 붉은 색 건물 지하 1층 18호실입니다.” “예. 고맙습니다.” 유전은 곧 바로 18호실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곳은 환자 입원실이 아니라, 장례시강이었다. ‘아니? 우리 황제님께서 돌아가셨단 말이야?’ 유전이 가서 보니, 18호실 장례식장에는 고인의 이름이, <나우나>이었다. 그리고 문상객들이 나이 든 아주머니들이 많았다.

 

그래서 유전은 자신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나훈아> 황제님의 본명은 <나우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일단 들어가서 문상을 했다. 국화꽃 한송이를 분향대 위에 얹어놓고, 절을 두 번 하고 물러나왔다. 고인의 영정사진은 감히 쳐다볼 수 없었다.

 

<황제 폐하>께서 돌아가셨는데, 감히 평민인 유전 자신이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영정을 째려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하늘이 맑았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이 캄캄해지더니, 소나기가 무섭게 쏟아졌다. 폭우가 쏟아졌다. 그리고 벼락도 치고, 천둥도 크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아! 역시 황제께서 돌아가시니까 하늘도 슬퍼서 이렇게 천둥벼락을 치는구나!’

 

유전은 비를 피할 겸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 들어갔다. 새벽에 일어나서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와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게다가 마라톤까지 했으니 무척 피곤했다. 커피를 마시고 곧 바로 잠이 들었다. 잠을 깨니 바로 옆 테이블에 어떤 아주머니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유전은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나훈아 씨가 돌아가신 사실 알고 계세요?”

“아니요, 못 들었는데요. 나훈아 씨가 돌아가셨어요? 언제요?”

“예. 저는 지방에서 급하게 올라왔는데, 돌아가셨어요. 정말 너무 슬퍼요.”

 

그 중 한 여자는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고 있었다. 유전은 커피잔을 들고 옆 테이블로 옮겨가서 그 여자를 위로해주었다. 그 여자의 친구가 유전에게 그 여자가 왜 나훈아 사망소식에 슬피 우는지를 설명해주었다.

 

“이 친구는 5년 전에 만리포해수욕장에 놀러갔다가 남편 되는 사람을 만났어요. 남편은 바닷가에서 이 친구에게 첫눈에 반했고, 그날 관계를 맺고 3개월 후에 결혼까지 했어요. 그래서 두 사람은 나훈아의 <해변의 여인>이라는 노래 때문에 두 사람이 결혼까지 했다고 해서 나훈아의 열성 팬이 되었고, 남편도 <해변의 여인>만 반복해서 들었어요. 그런데 작년에 이 친구 부부가 다시 옛추억을 떠올리기 위해서 만리포 해수욕장을 갔는데, 서울로 돌아오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남편께서 돌아가시고, 이 친구는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했어요. 그래서 지금도 이 친구는 나훈아의 <해변의 여인>이라는 노래만 들으면 너무 가슴 아파하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선생님께서 나훈아 씨 이야기를 꺼내고, 게다가 그 분이 돌아가셨다고 하니, 슬퍼하는 거예요.”

 

조금 있으니 커피숍에서 나훈아의 <해변의 여인>이라는 노래가 나왔다. 정말 이상했다. 어떻게 지금 이 시간에 <해변의 여인> 노래를 틀어줄까? 아마 나훈아 황제의 추모곡인 것처럼 생각이 들었다.

 

<물 위에 떠있는 황혼의 종이배/ 말없이 거니는 해변의 여인아/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황혼빛에 물들은 여인의 눈동자>

 

유전이 노래를 들으면서 울고 있는 여인을 자세히 쳐다보니, 정말 <해변의 여인>이었다. 눈물에 젖은 그녀의 눈동자가 황혼빛에 물들어 있었다. 슬픈 황혼의 어두운 빛이었다. 유전은 두 사람에게 자신이 술을 한잔 사겠다고 했다. 그래서 세 사람은 부근에 있는 술집으로 갔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유전이 늦게라도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가겠다고 했더니 그 여자들은 혼자 살고 있는 주미지(여, 37세, 가명)집에 가서 세 사람이 같이 자고 아침에 해장국이라도 먹고 지방으로 가라고 권했다.

 

비도 오고 해서 유전도 그렇게 하겠다고 따라갔다. 세 사람은 주미지의 집에 가서 새로 안주를 만들어서 술을 더 마셨다. 그리고 한 방에서 정신 없이 잠을 잤다. 그리고 아쉬운 미련을 남기고 유전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유전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후에 나훈아 씨는 완치가 되어 퇴원했고, 다시 정상적인 가수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유전이 대학병원 장례식장에 가서 문상을 하고 온, <나우나>씨는 가수 황제 <나훈아>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고, 노래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데, 불법으로 카셋트 같은 음반을 제작해서 판매하다가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지자 모텔 4층에서 뛰어서 도망가려다가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해있다가 사망한 사람으로 밝혀졌다.

 

유전은 처음에는 주유소 종업원으로 일을 하다가 치킨집을 운영하였다. 치킨집이 성업을 이루었다. 유전은 주미지에게 이야기를 해서 서울에서 혼자 지내기 심심하면, 유전에 치킨집에 와서 동업 형태로 일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래서 주미지는 유전의 동네를 알아볼 겸 서울에서 내려왔다. 여기에서 두 사람은 가까워졌고, 은밀한 관계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만나면 나훈아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말아야했다. 주미지가 곧 바로 죽은 남편을 연상하고 울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남진 이야기를 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이상하게 유전에게는 남진은 나훈아와 라이벌이었기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남진 이야기만 나오면 유전은 얼굴이 시뻘개지고, 호흡이 가빠지고, 손발이 떨리는 이상 증세를 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미지는 유전 앞에서는 <남>자도 꺼내지 않았다. <남>자를 꺼낼 수 없었기 때문에 불편한 때도 많았다. ‘음식을 남기지 말아요’라고 말할 때도, <남>자를 빼고, ‘음식을 기지 말아요’라고 했다. ‘그는 남자지요’라고 말할 경우에도, ‘그는 자지요’라고 말해야 했다. 모든 것은 <남진> 때문이었다.

 

그 후 신문을 보니 나훈아 씨는 7살 연상의 어떤 유명인과 결혼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유전이 따져보니, 자신의 애인 주미지는 7살 연상이었다. 정말 기가 막힌 인연이었다. ‘아! 이것이 바로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고, 숙명이고, 운명이구나! 어떻게 나훈아 황제가 걸어가는 그 길을 나도 똑 같이 걸어가고 있는가! 똑 같이 7살 연상의 아름다운 여인과 연애를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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