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은 운명 (191) <나훈아통닭발전추진위원회> 결성

 

최유전은 <나훈아통닭>의 투자자를 선발하는 것을 신중하고 공정하게 하기 위하여, 먼저 <나훈아통닭발전추진위원회(가칭)>를 구성하였다. 그 지역에서 사업가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남자 10명, 여자 10명, 그리고 향토예비군 5명, 민방위대원 5명, 노인요양원 입소자 10명, 노래방 경영자 5명을 먼저 선발했다.

 

그리고 나머지 5명은 사회저명인사로 채울 생각이었다. 이런 소문을 듣고 그 지역에서 국회의원 나갔다가 표를 별로 얻지 못한 건달이 제일 먼저 찾아왔다. 자신이 위원장을 맡아주겠다고 했다.

 

최유전 사장이 관상을 보니, 다음 번 선거뿐 아니라, 평생 국회의원 선거에 죽을 때까지 출마해도 표를 500표 이상을 받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이었다. 그래도 유전은 상대방에 대한 예우를 갖추려고 노력했다. “국회의원 낙선자께서는 우리 추진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맡게 되시면, 어떤 역할을 하실 생각이신가요?”

 

그랬더니, 상대방은 대번 화를 냈다. “아니 내가 그래도 큰 사업하는 회장인데, 선거에서 한번 떨어진 걸 가지고, 호칭을 <낙선자>라고 한다는 말요? 그건 선생이 실수했다고 치고, 내가 위원장이 되면, <나훈아>를 만나서 매달 한번씩 <나훈아통닭집>에 내려와서 무상으로 공연을 하도록 갈 거요. <나훈아통닭>은 전세계에서 최초로 <나훈아>이름을 통닭집 상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고, 장차 <나훈아통닭>이 한국뿐 아니라, 북한이나 일본,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파키스탄 등 아시아 국가 전역에 걸쳐 프랜차이즈가 확대되고, 더 나아가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태리 등 유럽 전역과 미국, 멕시코, 브라질 등까지 퍼져나가면 토탈 프랜차이즈 숫자가 아무리 못잡아도 100만개는 될 텐데, 그깟 <나훈아>가 별 대수요? 내가 오라고 하면 술마시고 잠을 자다가도 맨발도 이곳까지 뛰어올텐데,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런데 회장님께서는 나훈아 황제님을 직접 만나본 적이 있으신가요? 적어도 공연장에서라도 악수를 해보셨나요?”

 

“나는 원래 사업에 바쁘고, 특히 정치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있어서 나훈아 같은 조무래기 가수는 만날 시간이 없을 뿐 아니라, 이름 자체를 기억하는 게 힘들어요. 나는 원래 아주 유명한 가수, <박재홍>의 <울고 넘는 박달재>, <신세영>의 <전선야곡>, <백년설>의 <마음의 고향>, <김정애>의 <닐리리 맘보>,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 같은 명곡을 좋아는 편이예요. 이런 노래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명곡이지, <나훈아>처럼 머리 길게 기르고, 꼭 술에 취한 듯한 애매한 표정을 하면서 일부러 가성처럼 이상한 소리를 내는 가수는 사실 별로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 최 사장이 어렵게 우리 지역에다, <나훈아통닭>을 냈으니까 나는 지역발전을 위해 내가 피라미, <나훈아>를 한번 불러보겠다는 것이지 별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야. 그리고 사실 나는 다음 번 선거 준비도 곧 시작해야 하니까, 위원장을 맡아도 끝까지 할 입장은 아닌 거야.”

 

“아니, 회장님, 국회의원선거는 지난 4월 15일 끝났고, 다음 선거는 앞으로 4년이나 더 남았는데, 벌써부터 다음 번 선거운동을 하시려고 그래요?”

 

국회의원 낙선자는 점점 거만해져서 최 사장에게 반말 비슷하게 낮추었다. “원래 선거는 평생 해야 하는 거야. 그런데 요새 뉴스를 보니까 나쁜 사람들이 서울 살다가 선거 직전에 지방에 있는 지역구로 주민등록이전하고, 집은 월세로 몇 달 얻고, 선거할 때는 지역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겠다고 떠들다가, 당선돼도 서울로 가고, 떨어지면 앞으로 두 번 다시 그 지역 사람 보지 않을 것처럼 짐 다 싸가지고 서울로 돌아가고 주민등록도 전출신고 곧 바로 해버려. 이런 사람들은 인간이라고 할 수 없어. 오직 자신의 부귀영화, 명예를 위해서 지역구민들을 선거 때만 이용해먹는 나쁜 사람들이야. 나는 그런 사람들을 경멸해. 나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이 지역을 떠나지 않아. 이사도 다른 곳으로 가지 않을 거고. 다만, 내가 사는 아파트가 곧 재건축된다고 해서 그때는 할 수 없지."

 

최유전은 그 낙선자의 말을 듣고 있자니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이런 인간들이 국회의원을 하고 있으니, 나라가 잘 될 턱이 있나! 그리고 떨어진 주제에 어떻게 위원장을 맡겠다는 거야? 그리고 왜 반말이야!’

 

“알겠습니다. 회장님! 제가 가서 더 생각을 해보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응! 그래 나도 바쁘니까 내일 오전 10시까지 확답을 줘.”

 

최유전 사장은 결국 <나훈아통닭발전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그 지역에서 음악선생님으로 정년퇴임하신 <고음악> 원로선생님을 모셨다.

 

<고음악> 선생님은 태생적으로 음악에 뜻을 두신 분으로서 그 부친께서도 일찍이 뜻한 바 있어, 큰 아들 이름을 <음악>이라고 지었다.

 

그 부친은 예능쪽에 관심이 많아, 둘째 아들은, <고미술>로 이름을 짓고, 셋째 딸은, <고배구>로 지었다. 넷째 딸은, <고발레>로 하였고, 여섯째 막내 아들은, <고게임>으로 지었다.

 

그 부친은 자녀들의 이름을 짓기 전에 사주관상을 보는 사람들과 상의도 하고, 예능 분야의 장래에 대해서도 인터넷상에 올라와있는 여러 가지 분석자료를 모두 찾아서 결정한 것이었다.

 

그래서 큰 아들은 서울까지 올라서 명문 음악대학을 비록 성적은 겨우 과락을 면했지만, 졸업하고 나중에 고등학교 음악선생을 했다. 둘째 아들, <고미술>은 그림을 그리도록 시켰는데, 끝내 화가는 되지 못하고, 대신 옛날 미술작품 수집판매상이 되었다. 이름은 高美術이었는데, 실제 하는 일은 <古美術>이 된 것이었다.

 

부친은 돌아가실 때까지 이 점을 무척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런데 <고미술>은 다른 것은 다 잘 그리는데, 사람은 절대로 잘 못그렸다. 아무리 열심히 그려도 인물화에서 남자와 여자가 구별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고미술>이 그린 남자 인물화를 보면, 여자처럼 보는 사람들이 99.9%였다.

 

아주 드물게 그린 남자를, <성전환수술을 잘못한 여자>로 보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 봐주는 사람도 혈중알콜농도 0.19%로 거의 치사량에 가까운 술을 짬뽕으로 마시고 그림 판정을 한 것이었다. <고미술>이 그린 여자 나체 사진도 마찬가지였다.

 

언뜻 봐서 그림에는 <남자 성기>가 보이지 않아, <여지>인 것처럼 보이지만, 100명 중 101명은 남자의 신체를 그렸는데, 그 남자의 성기가 너무 작아서 100배율의 망원경을 놓고 보아야 겨우 남자성기를 찾아낼 수 있을 정도였다. 머리를 길게 그려놓아도 그건 정치인이 항의성으로 갑자기 삭발을 해서 머리 모양이 더럽게 되었으니까, 오래 쓸 것도 아니고 해서, 동대문 풍물시장에 가서 누가 쓰다가 교통사고로 죽었기 때문에 길에 떨어져 있는 것을 먼지만 털고 파는 고품판매상으로부터 거의 공짜로 사온 가발을 쓴 남자처럼 보였다.

 

그래서 <고미술>은 아버지가 피카소나 클림트 같은 세계적인 화가를 만들어서 돈방석에 앉히려고 했던 원대한 꿈을 접고 말았다.

 

셋째 딸, <고배구>는 키가 커서 배구선수를 시켰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잘 했는데, 나중에 대학교에 가서도 특기자로 키우려고 했지만, 이상하게 오른쪽 팔과 왼쪽 팔의 길이가 너무 차이가 나서 배구감독이 결사반대를 해서 중도에 그쳤다.

 

너무 실망한 딸도 한때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생을 마감하려고 했다. 아버지는 잘못했다가는 소중한 딸의 인생을 망칠 것 같아서, 다시 사주관상 보는 사람에게 돈을 많이 주고 좋은 방법을 찾아달라고 했다. 그래서 가정법원 판사의 허가를 어렵게 받았다.

 

이때 변호사 비용도 많이 들어갔다. 아버지는 딸의 이름을, 성을 그대로 놔두고, 이름만, <배구>에서 <탁구>로 바꾸었다. 탁구는 오른쪽 손으로만 치니까 팔의 길이 차이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국제배구연맹에서 유권해석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겨우 탁구선가 되었지만, 너무 늦게 시작해서 그런지 빛을 보지 못하고 선수생활을 은퇴했다. 그 대신 딸은 키가 크고, 양쪽 팔 길이가 1센티미터도 차이가 나지 않는 <양팔동> 선수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넷째 딸, <고발레>는 발레를 하라고 이름을 그렇게 지었는데, 발레를 하다가 재미 없다고 포기하고 나이 들어서는 지루박과 불루스에 미쳐서 나이트클럽과 캬바레만 돌아다니다가 제비족에게 걸려, 인생이 아주 벌체처럼 되어 버렸다.

 

마지막 막내 아들은, 아버지 생각에 <고게임>으로 해서 컴퓨터전문가로 만들려고 했는데,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구들이 <게임왕>으로 모셨기 때문에 학교 공부는 꼴찌를 맡아서 했고, 게임만 했는데, 이상하게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게임에서도 성공하지 못하고 실업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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