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25)

 

반합격의 아버지인 반한문은 반씨 집안의 5대 독자인 합격의 교육에 대해서만 혼신의 힘을 쏟았다. 비록 과거를 보거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초야에 묻혀 학문에 정진하고 있던 한문은 경제적인 문제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나름대로 전통파 유학자로서 그에 따른 모범적인 생활을 철저하게 했다. 한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삼강오륜(三綱五倫)이었다. 한문은 본인이 삼강오륜을 공부한 다음에는 평생 살면서 한번도 이를 위반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만날 때마다 삼강오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실천하도록 잔소리를 했다. 아버지가 동네 사람들에게, “우리 모두 삼강오륜을 잘 지켜야 합니다.”라고 말하면, 동네 사람들은 삼강오륜을 잘 모르고, 오륜은 올림픽경기를 뜻한다는 뉴스를 들었기 때문에, 올림픽경기에서 세 가지 강한 종목, 특히 한국으로서는 피겨스케이팅, 스피드 스케이팅, 스켈레톤 세 가지 종목으로 생각했다.

 

특히 2018년도 평창올림픽을 대회 기간 동안 다른 일을 전혀 하지 않고, TV를 시청했기 때문에 올림픽 전 종목에 대해서 소상하게 알고 있는 체육고등학교를 중퇴한 동네 반장이 삼강오륜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주었다.

 

그랬더니 한문은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땄던 피겨스케이팅은 알고, 스피드 스케이팅은 스피드가 들어가니까 KTX나 대한항공 비행기처럼 빠른 속도로 무슨 경기를 하는 정도는 알았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이야기하는 스켈레톤(skeleton) 경기에 대해서는 무슨 말인지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명색이 대단한 유학자이며, 한학자인 자신이 그깟 용어에 대해 모른다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특히 반장은 한문처럼 정통으로 학문을 한 것이 아니고, 고등학교 다니다가 친구들과 싸움을 해서 학교폭력으로 퇴학을 맞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무식한 반장에게 지식을 물어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스켈레톤의 뜻을 잘 알고 있다는 것처럼 반장에게 물었다. “그래, 자네는 스케일링을 어느 치과에서 했나? 스케일링도 요새는 보험이 된다면서?” 아버지는 스켈레톤을 치과에서 하는 <스케일링>으로 알아들었다.

 

그 이유는 반장이 원래 담배를 많이 펴서 이빨을 드러내놓고 크게 웃으면 이빨은 보이지 않고, 시커먼 콜타르를 입에 물고 곧 죽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랬더니, 반장은, “아니! 어르신, 스케일링이 무슨 보험이 됩니까? 그건 잘못 알고 계신 겁니다. 만일 스케일링이 의료보험이 되면 당연히 정부에서 반장인 저에게 공문을 보내왔을 것이고, 그러면 반장인 제가 당연히 동네 어르신들게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알려드렸을 겁니다. 아직 스케일링은 보험이 안 됩니다. 그리고 저는 1년에 한번씩 꼭 치과에 가서 스케일링을 하고 있어서, 의사 말이 저에게는 치석이 하나도 없고, 이가 건강하고 반들반들 윤이 난다고 칭찬을 합니다.”

 

그러면서 반장은 아버지를 비롯해서 같이 있는 동네 사람들을 향해서 자신의 입을 크게 벌리고, 치아를 자신 있게 보여주었다. 아버지가 보니까 정말 그것은 이빨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너무 새까많고, 입에서 내뿜는 악취가 폐수배출업소 종말처리장 안에 빠진 것 같았다.

 

아버지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반장은 신이 나서, 설명했다.“어르신, 쓰깰라이똥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선수가 머리를 아래로 두고 엎드린 자세로 하는 경기인데요. 미국에서 인디언들이 사냥을 해서 잡은 동물을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 쓰던 썰매를 변형해서 경기를 하는 겁니다. 쓰깰라이똥은 1988년에 개최된 생우동올림픽에서 올림픽종목으로 채택되었다고 합니다. 아시겠지요? 어르신도 기회가 되면 한 번 타보세요. 정말 스릴 있고, 한번 해보면 게이트볼은 저리 가라예요.”

 

반장도 어디서 주워들었지만,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었고, 워낙 말이 어려워서 제대로 전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실제로 스켈레톤은 1928년에 열린 생모리츠동계올림픽에서 루지보다 먼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것이었다.

 

반장이 이렇게 어렵게 설명하자. 마침 동네에서 어렸을 때부터, 썰매를 직접 만들어서 탔고, 그 또래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썰매의 황제>인 <왕눈이>가 나섰다.

 

“어이 반장! 쓰깰라똥을 1988년도에 <생우동>올림픽 때 처음 종목으로 채택되었다고 그랬는데, 1988년에는 내가 서울에 있었고, 그때는 노태우 대통령 때 서울올림픽을 서울 송파에 있는 올림픽공원에서 한 것이지, 어떻게 1988년도에 <생우동>올림픽이 열렸다고 그래! 그리고 내가 기억하기에는 <생우동>올림픽이 아니라, 일본 어디선가 <생라면>올림픽이었을 거야. 이래 봐도 내가 썰매을 직접 만들어서 오래 탔던 사람이고, 썰매 하면 대한민국에서 내가 원조인데, 그걸 모를까봐 그래! 그리고 이런 문제는 동네 어르신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이니까, 나중에 시간을 가지고 정확하게 확인해서 다시 알려드리는 게 어때!”

 

반장은 <생우동>이 맞다고 자신의 고집을 꺽지 않았고, <썰매의 황제>는 <생라면>이 틀림 없다고 우겼다. <썰매의 황제>는 만일 <생라면>이 아니고, <생우동>이 맞다면, 자신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절단해서 마을에 기부할 것이라고 엄숙하게 발표했다.

 

사람들은 너무 무서웠다. 만일 <썰매의 황제>가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절단해서 마을에 기부하면, 그것을 동네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는 마을 입구에 있는 커다란 소나무에 걸어놓아야 하고, 거기에 기증자 성명과 기증사유, 기증물의 구체적 설명문을 붙여놓아야 하는데, 그에 소요되는 비용도 문제지만, 만일 새끼손가락을 걸어놓았는데, 동네 딱따구리나 날짐승이 갉아먹으면 이를 보충하기 위해, 계속해서 <썰매의 황제>를 찾아가서 다른 손가락을 잘라서 기부하라고 요구를 해야 하는데, 이런 <고양이에게 방울을 다는 일>을 누가 무보수로 할 것이냐가 큰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문제는 너무 심각해서 마치 선거 때 참패를 한 대표에게 가서, “대표님께서는 이번 선거에서 참패를 했기 때문에, 정계은퇴하시고 외국에 가서 5년간 계시다 오셔야합니다. 그리고 해외에 계시더라도 삭발하고, 단식을 한달 정도는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대표님께서 한국에 계시면 유권자들이 꼴보기 싫어할 것이고, 그것 자체가 공해이기 때문에 나라 경제에도 좋지 않습니다. 만일 그러다가 돌아기면 저희가 책임지고 국립현충원에 모실 것입니다.”라고 건의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건의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동네에서 <썰매의 황제> 손가락 하나를 더 요구한다는 것은 자칫 잘못했다가는 이성을 잃은 <썰매의 황제>가 도끼를 들고 나와서 자신의 손가락을 절단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건의자의 손가락을 잘라서 그것을 가져다가 매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이 문제로 동네에서는 마을 전체에 공포분위기가 조성되었고, 그 공포심의 강도는 북한에서 핵미사일을 세 차례 연거푸 발사했을 때보다 열배가 강했다.

 

합격의 아버지 한문은 자신이 원래 가르치려고 했던 것은 유교의 <삼강오륜(三綱五倫)>이었는데, 반장이 워낙 한문도 모르고 무식해서 <삼강오륜(三强五輪)>으로 연결시켜서 진도가 나가지 못하고 중단된 데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래서 좌중을 진정시키고, 아버지는 삼강오륜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삼강이라 함은, 군위신강, 부위자강, 부위부강이요. 오륜이라 함은, 군신유의, 부자유친,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을 말하는 거요. 이것을 지키지 못하면 그건 사람이라고 할 수 없어요. 짐승이지!”

 

사람들은 한문이 말하는 내용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 말은 옛날 조선 시대 할 일 없는 선비들이 상투를 틀고 앉아서 남들은 논과 밭에 나가 힘들게 일하고 소 풀 뜯고 있는데, 아무 소용도 없이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것으로 무시했다.

 

그리고 특히 <삼강>은 옛날부터 롯데삼강아이스크림이 롯데껌과 마찬가지로 맛이 좋아서 모두들 알고 있는데, 왜 갑자기 한문이 아이스크림 이야기를 꺼내는가 의아해했다.

 

옛날 동네에서는 상표 없는 그냥 무명의 아이스께끼통을 들고 다니면서 한 개에 1원씩 팔러다녔다. 그때는 아이스께끼통도 작게 만들어서 개수도 많이 들어가지 않았고, 또 얼마 안 있으면 그 안에 있는 아이스께끼가 절반쯤 녹아서 더 이상 팔 수도 없었다.

 

아주 단단하게 얼려야 했는데, 팥이 아주 조금밖에 들어가 있지 않아서 엉터리가 많았다. 사람들은 한문이 바쁜 사람 붙잡아놓고 아이스크림 이야기를 장황하게 했으면, 마트에 가서 아이스케키 하나씩이라도 사서 돌려야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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