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가치(value of tears)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은 미국 뉴욕 출신의 팝아티스트이다. 그는 1923년 출생해서 1997년 사망했다. 대중적인 만화를 주로 작품의 소재를 선택해서 그림을 그렸다. 그의 그림의 주된 특징은 밝은 색채와 형상을 단순화하는데 있다. 윤곽이 뚜렷하고, 기계적인 점을 가미하고 있다.
그의 작품인 ‘행복한 눈물(happy tears)'은 한국에서도 최근에 널리 소개되고 있다. 행복한 눈물은 빨간 색깔의 머리에 붉은 메니큐를 칠한 여인이 눈물을 머금고 있는 모습이다. 이 그림은 한 여인이 눈물을 흘리며 웃고 있는 만화 이미지를 확대한 가로, 세로 96.5㎝의 작품으로서 순수예술과 만화와 같은 대중예술의 경계를 허문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리히텐슈타인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을 높인 계기가 되었다.
그 그림을 보면서 왜 행복한 눈물이라고 제목을 붙였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선뜻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미술 작품에 대한 감각이 부족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우는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웃는 모습도 아니다. 단지 눈물 두 방울이 양 눈에서 밖으로 나와 붙어 있을 뿐이다.
그것이 꼭 눈물이라고 볼 수도 없다. 화가의 작품은 보는 사람의 주관적인 감상에 의해 판단된다. 그러니 제목을 그렇게 행복한 눈물이라고 붙인 것은 작가이고, 작품을 감상하는 나는 '눈물의 의미'라고 제목을 붙이고 싶었다. 아무튼 특이한 작품이다.
사람이 흘리는 눈물은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다. 눈물은 아무 때나 흘려지지 않는다. 눈물은 흘리고 싶다고 흘려지는 것도 아니다. 눈물은 내면의 감정이 격한 자극을 받을 때 나오게 된다. 눈물은 대체로 슬픈 감정을 진하게 느낄 때 흘린다. 경우에 따라서는 너무 기쁠 때 흘리기도 한다.
진정한 눈물은 슬픔을 느낄 때,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압도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러므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다. 세파에 많이 시달린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지도 못한다. 슬플 때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살면서 고생을 하는 것은 큰 재산이라고 한다. 특히 젊었을 때 눈물에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은 나중에 강한 인생을 살 수 있게 된다. 고통과 시련을 겪어본 경험은 그 사람을 진주로 만들게 한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그 고마움으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나중에 그에 대한 은혜를 잊지 않고 갚으려고 애를 쓰게 된다.
사랑을 받아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그 사랑을 배신하지 않는다. 눈물은 우리의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눈물의 진정한 가치는 그 눈물이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일 때 상대방을 감동시킨다. 눈물이 값진 것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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