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52)

아버지는 마지막 생활비를 보내면서 어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남편 노릇을 제대로 못해 미안해요. 돈철이와 잘 살아요. 나는 더 이상 능력이 없어 당신과 돈철이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요.’

어머니는 이혼할 때 위자료도 못받고, 재산분할도 못받았다. 아버지가 방탕한 생활을 해서 아무런 재산도 모으지 못했고, 겨우 살고 있는 월세집 보증금만 어머니 명의로 해놓고 있는 상태에서 아버지가 나갔기 때문이었다.

돈철에 대한 학비나 양육비도 받지 못했다. 어머니는 20년의 긴 세월 동안 한 남자에게 철저히 이용 당하고, 버림 받았으며, 완전히 거지 상태로 내팽겨쳐졌다.

남녀가 평등하고, 여성 파워가 세지고 있는 21세기에도 이런 불평등과 차별, 억울한 현실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사회적인 시스템이나 법과 제도는 여성가족부와 사회 전체의 노력으로 크게 개선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막상 개별적인 가족 내부 문제로 들어가면 돈철 어머니처럼 힘 없는 여성의 권리와 인권은 무참하게 짓밟히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 사회는 돈철 어머니의 권리를 지켜주거나 보살펴주는데 아주 무기력했다.

아버지의 이런 무책임한 행동 때문에 돈철은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돈철은 그때까지만 해도 비교적 순종적이었다. 부모 말씀 잘 듣고, 혼자 교회도 열심히 다녔다. 학교에서도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무난했다. 운동도 좋아했다.

다만, 아버지가 늘 여자 문제로 어머니와 싸우고 집안 분위기가 무겁고 어두워서 성격은 내성적이고 우울한 편이었다. 그래서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고, 주로 게임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게임은 밤낮없이 열심히 했기 때문에 장차 게임프로그래머를 하면 잘 할 것 같았는데, 그것도 목표는 아니었다. 단순히 시간을 떼우기 위한 심심풀이용이었다. 돈철은 아버지 때문에 그랬는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여자에 대한 관심도 없었고, 이상하게 여자를 싫어하고 거부하는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돈철의 친구들은 여학생들과 데이트도 하고 성관계도 하였지만, 돈철은 그런 남녀간의 연애나 성관계를 아주 더럽고 동물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자위행위 자체도 더럽다고 생각해서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성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그 친구들이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이혼을 강요하고 끝내 이혼까지 하게 되자, 그때부터는 아버지에 대해서도 극심한 배신감을 느끼게 되었고, 아버지를 원망하게 되었다. 그런 아버지를 만나게 된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도 비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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