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동에서>
갑자기 비가 내린다
들어갈 때는 안 그랬는데
상황은 언제나 변한다
갑자기 생기는 거다
법정은 조용하다
수많은 근심과 걱정이 있고
원망과 증오가 폭발하고 있는데도
모든 것은 고요 속에 억눌린다
문을 나서면 얼마나 달라질까
정신은 가벼워질까
더 혼탁하고 무거워질까
거리의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우울한 표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빗소리를 들으며
단풍을 본다
물에 젖은 가을잎이 차분하다
운명을 받아들이며
마지막 축제로 향한다
한때 청춘이었다
젊음을 불태우기도 했다
감성에 이끌려 초원으로 갔고
벌판에서 벌거벗은 채
허공을 향해 발버둥쳤다
그곳에는 세월이 있다
선명한 흔적으로 남았다
삭막한 아스팔트에서
비정한 시선을 피하면서
먹을 것을 찾아 나선 산짐승처럼
쳇바퀴를 돌고 있던 시간이
빗물 속에 묻혀 있다
비가 그치면 걸을 거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성 때문에 억눌리지 않았던 것처럼
현실 때문에 슬퍼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렇게 가을 속으로 나아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