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이 어려운 이유는 둘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은 육체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까지 곁들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상대방의 육체와 정신을 모두 끌여들여 자신의 육체와 정신으로 감싸는 과정이다. 여기에 바로 사랑의 어려움과 한계가 있다.

어떻게 상대의 육체와 정신을 동시에 자신의 그것과 결합시켜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때문에 사랑은 먼저 내가 너를 사랑해야 시작된다. 그것이 사랑의 출발점이다.

내가 먼저 너를 사랑한 다음, 네가 움직여져 다시 나를 사랑하게 될 때 사랑은 시작된다.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이럴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가?

많은 사랑의 밑바닥에는 주관적인 착각, 오해, 그리고 그릇된 믿음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일방적인 사랑에는 그런 면이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상대방이 과연 자신을 똑 같은 강도로 사랑하는가?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자신에게 던지는 이러한 질문은 결국 어리석음으로 끝난다. 상대방은 사랑을 전혀 다른 시각에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왜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는가를 집요하게 자문하면서도 동시에 사랑하는 이가 자기를 사랑하면서도 다만 말하지 않고 있을 뿐이라는 믿음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곧(혹은 동시에) “왜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나요?”란 질문은 “왜 날 조금만 사랑하나요?”란 질문으로 바뀐다. 어떻게 당신은 날 조금만 사랑할 수 있나요? 조금만 사랑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나는 지나침 또는 충분치 않은 것의 체제하에 살고 있기에 일치를 열망하며, 전부가 아닌 것은 내게 모두 인색해 보인다. 내가 찾는 것은 양적인 것이 더 이상 인지되지 않는, 그리하여 결산하는 것이 추방된 그런 장소를 차지하고자 함이다.>

-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지음, 김희영 옮김, 268~269쪽에서 -

사랑의 진실 안에는 거짓과 위선, 교만과 독선이 들어 있다. 그 때문에 사랑은 신음하며, 질식하게 된다. 사랑이 나중에 소멸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 내포하고 있는 이와 같은 인간적인 약점 때문이다.

완전하지 못한 사랑은 때로 인격적인 수단에 의해 분식되고 치장된다. 고단수의 화장술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아름다운 외모를 보인다. 사악한 심성은 가벼운 선행, 동정심의 발로 등으로 감추어진다.

잘못 살아왔던 과거는 솔직한 고백으로 모두 치유되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그런 다음 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독점하려고 하며,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상대방을 자신의 노예로 만들려고 한다.

어리석은 상대방 역시 사랑은 평온해야 한다는 그릇된 믿음에 빠져 불합리한 명령을 따르게 되고, 자신의 모든 자유를 포기한 채 노예선의 선원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나 이러한 왜곡된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하고, 시간이 가면서 후회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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