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잎 사랑

내 안에 있던 사랑이 밖으로 나갔다. 잠에서 깨어나 보니 보이지 않는다. 더 이상 손에 잡히지 않는 사랑 때문에 텅빈 가슴을 쓸어안고 허공을 바라본다.

가을은 성숙한 사랑을 품은 채 미소짓고 있다. 그 사랑은 주인을 알 수 없다. 사랑이라는 여신(女神)은 사랑했던 사람들을 떠나서도 스스로 존재한다.

어둠이 내리면 모든 존재는 낮아진다. 별이 뜨기 때문이다. 별빛에 반사되는 자신의 존재를 찾아야 한다. 무(無)에서 허무를 느끼고, 허무한 가슴은 다시 무(無)로 돌아간다.

한낮에 쌓았던 모래성들이 파도에 휩싸여 사라지고 있다. 낮에는 교만한 작은 모래성의 성주였는데, 그 성이 무너져 버린 지금 흘리는 눈물은 바닷물에 떨어지면서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은행잎에 글을 적는다. 사랑이라고 써놓고 한없이 운다. 내 영혼이 혼자서 은행잎 위에서 구르고 있다.

내가 사랑인지, 사랑이 나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노란색이 갈색을 덮고 있다. 갈색이 노란색에 눌려 신음하고 있다. 대지 위에는 사랑이 저 혼자 굴러가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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