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91)
진근(남, 32세, 가명)은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 다녔다. 고등학교 때부터 글쓰는 것을 좋아했다. 영어나 수학은 취미가 없었지만, 책을 참 좋아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책을 좋아해서 일주일에 한권씩은 빼놓지 않고 읽었다.
그러니까 1년에 100권은 최소 읽은 것 같았다. 주로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았다. 매일 책만 읽고 있으니까 학교 성적은 좋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진근은 오히려 책은 읽지 않고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해서 성적이 좋은 친구들을 우습게 보았다. 대화를 해보면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시야도 매우 좁았다. 사고도 아주 제한되어 있어 답답했다.
게다가 책도 읽지 않고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고 멋이나 부리는 여자 친구들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여자 친구는 사귈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진근의 아버지는 사업수완이 좋아서 돈을 잘 벌었다. 처음에는 돼지갈비집을 작은 규모로 시작했다. 그런데 어떻게 제주도 흙돼지고기를 잘 아는 사람을 통해서 가져다가 양념을 잘 해서 팔았는데 그게 힛트를 쳤다.
식당 이름도 특이하게 ‘제주똥’이라고 지었다. 제주도에서 인분을 먹고 자란 돼지라는 의미이었는데, 사람들은 간판을 보고, ‘통’이라고 쓸 것을 간판업자가 술을 마신 상태에서 실수로 ‘똥’이라고 잘못 써놓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손님들은 자기들끼리 약속 장소를 정할 때, ‘제주통’이라고 이심전심으로 불렀다.
그런데 심뽀가 나쁘거나, 어렸을 때 똥오줌을 잘 가리지 못했던 사람들은 ‘똥’에 한이 맺혀서 일부러 사람들 앞에서 들으라고 ‘제주또~~옹’이라고 큰 소리로 말하면서 액센트를 ‘똥’‘에 두었다.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경찰서에서 진근 아버지 간판에 ’똥‘이라고 쓴 것을 두고 문제삼기도 했다.
아버지 식당을 관할하는 경찰서에서는 아버지가 군사독재정권에 평화적인 투쟁방법으로 ’대통령‘의 가운데 글자인 ’통‘ 대신 ’똥‘이라고 의도적으로 쓴 것이 아닌지 특별조사를 했고, 혹시 상호등록을 했는지 여부도 확인까지 했다.
아버지 성향이 의심스럽다면서 조상 중에 6.25 전쟁 중에 부역을 한 사실이 있는지도 확인했다.
다행이 아버지는 명함에는 ’제주통‘이라고 써놓았다. 경찰관은 아버지에게 이름을 바꾸는게 어떠냐고 종용했지만, 아버지는 이미 이름 때문에 경찰에 불려가서 조사까지 받았기 때문에 그 정도면 벌써 아버지 사회적 체면은 땅에 떨어졌고, 품위 있던 명예는 똥이 되었기 때문에 오기가 발동해서 징역을 가면 갔지 상호는 절대 바꿀 수가 없다고 고집을 부렸다.
이런 시비가 벌어지고 있을 때 대통령이 마침 시해되는 사건이 발생해서 경찰에서도 더 이상 아버지에게 시비를 걸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아버지는 지역에서 유명해졌다.
독재정권에 맞서서 목숨을 걸고 ‘똥’을 지켜냈다는 칭송이 자자했다. 그 바람에 사람들은 아버지 식당에 와서 매상을 올려주려고 했다. 갑자기 장사가 잘 되자, 아버지는 신바람이 났다.
모든 것이 돼지똥 때문이라고 믿은 아버지는 돼지가 똥을 누는 사진이나 그림을 수십장 그려 식당 안에 도배를 했다. 사람이 대변을 보는 것과는 달리 돼지가 똥을 넣는 사진이나 그림은 귀엽고 자연스러웠다.
그것을 보고 돼지갈비를 먹는 식욕이 떨어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식욕이 넘쳤다고들 했다. 아주 극소수의 변비환자들만 그 사진을 보고 짜증을 내고 들어왔다가 그냥 가기도 했다.
반면에 어떤 40년된 만성 변비환자는 아버지 식당을 단골로 다니다가 변비를 완전히 고치는 기적을 맛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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