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26-1)
정 사장이 아침에 눈을 떠보니 가관이었다. 방안 작은 탁자에는 와인병이 많이 놓여 있었다. 먹다 만 안주도 기분 나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어제 밤 박 과장을 불러서 같이 술을 마신 것은 기억이 나는데, 그 후 어떻게 된 것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쇼파에는 박 과장이 매고 있었던 보라색 스카프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박 과장에게 어떤 실수를 한 것이 걱정도 되었다. 아무런 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잘 모르는 일이라 걱정이었다.
일단 샤워를 하고 아침 식사를 하려고 나서려는데 손목시계가 없었다. 지갑이나 다른 물건을 다 있는데, 시계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했다. 박 과장이 그런 짓을 할 리는 없고, 그렇다고 어제 저녁에 방에 들어올 때 분명히 시계를 차고 있었던 기억도 났다. 그런데 시계가 보이지 않으니 귀신이 곡할 일이었다. 그렇다고 박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볼 수도 없었다. 혼자서 10분 이상 다시 찾고 찾았지만 끝내 시계는 보이지 않았다. 정 사장은 하는 수 없이 같이 간 김 이사에게 연락해서 방으로 오라고 했다. 사정을 이야기 들은 김 이사는 곧 바로 프로트 데스크로 가서 정 사장이 숙박하고 있는 방 복도에 설치되어 있는 CCTV를 확인해 보자고 했다. 그런데 밤 1시가 넘어서 박 과장이 정 사장의 방에서 나오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손에는 아무 것도 들고 있지 않은데, 복도 주변을 조심스럽게 두리번 거리면서 문을 소리가 나지 않게 조용히 열고 나와서 급하게 엘리베이터쪽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김 이사는 놀랐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여비서가 왜 그 늦은 시간에 정 사장 방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래서 언제 들어간 것인지 CCTV를 돌려보았다. 박 과장이 정 사장 방으로 혼자 들어간 것은 그러니까 저녁 10시 조금 넘어서였다. 박 과장은 무려 세시간 동안이나 정 사장 방에 들어가 있다가 새벽 1시경에 나와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리고 정 사장 시계가 분실되었다는 것이다.
CCTV상에는 박 과장이 정 사장의 시계나 다른 물건을 들고 나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손목시계를 손목에 차고 있는 것인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긴팔의 불라우스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 이사는 정 사장에게 이런 사실을 CCTV에서 확인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김 이사는 다시 정 사장 방으로 올라가서 방 안을 샅샅히 뒤져보았다. 시계는 침대 옆으로 떨어져 벽 쪽 밑에 있었다. 정 사장이 술에 취해 침대 위에 있던 시계를 밀어서 떨어뜨린 것 같았다.
“사장님. 여기 있습니다. 왜 이곳에 떨어져 있을까요?”
“글세, 이상하다. 내가 샤워를 하고 가운을 입고 있었는데, 분명히 시계를 풀러놓고 침대로 갔을 텐데...”
“어제 밤에 술을 많이 드신 것 같네요. 이렇게 많은 술을 혼자 드셨습니까?”
“응, 어제는 이상하게 술생각이 많이 나서 혼자 늦게까지 마셨어. 지금 속도 좋지 않아. 그래도 식사를 하러 가지.”
김 이사는 쇼파에 놓여 있는 여자 스카프가 박 과장 것임을 알았지만, 그것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정 사장과 박 과장이 정사를 벌였다는 증거를 확인하기 위해 휴지통도 보았지만, 성관계 뒤처리를 하는데 사용한 크리넥스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 김 이사는 겸연쩍기도 해서 시계를 찾아준 다음 곧 바로 호텔 식당으로 먼저 내려갔다. 그곳에는 박 과장을 비롯한 다른 잭원들이 모두 먼저 와서 사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박 과장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김 이사나 정 사장 모두 시계사건에 관해서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모든 것은 자연스러웠고, 일행의 스케줄은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특이 사항 없이 무사히 일본 출장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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