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너무나 성격이 다른 부부가 사는 법

 

그런데 강 교수 부인은 결혼하기 전이나 결혼하고서도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 전까지는 강철민이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강 교수 18번은, ‘쨍하고 해뜰 날’이었는데, 그 노래는 가사를 보지 않고도 2절까지 글자 한자 틀리지 않고, 반주가 없어도 잘 불렀다.

 

강 교수는 언젠가 술에 취해 친구들에게, 자신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늘 음지에서만 살았는데, ‘쨍하고 해뜰 날’을 18번으로 정하고 꾸준히 불렀더니, 108번째 그 노래를 부른 그 다음 날, 부잣집 외동딸을 만나서 팔자를 고쳤다는 경험담을 자랑 삼아 이야기했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도 좋아했는데, 강철민은 ‘처갓집 재산은 우리 것’으로 가사를 바꾸어 부르기도 했다. 이런 노래는 처갓집 재산을 탐내는 것처럼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있자, 강 교수는 그 후부터는 ‘내 땅은 장인 것’이라고 가사를 전격적으로 바꾸었다.

 

강 교수는 늘 이런 말을 되풀이했다. “사람은 좋은 노래, 밝은 노래를 불러야 한다. 젊었을 때 요절한 가수 노래는 절대로 불러서는 안 된다. 어두운 노래, 부정적인 노래를 부르면 그렇게 운명이 비뚤어진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있었기에, 강 교수는 배호나 남정희 노래는 부르지 않았다. 대신 80세 넘게 건강하게 살고 있는 원로가수들의 노래를 즐겨 따라했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80세까지 살았어도 장수한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자, 강 교수는 외국에서 100세 넘게 가수활동을 하고있는 사람이 있는지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아직까지 그런 최장수가수는 찾지 못했다.

 

한번은 영국의 그룹, 런던 보이스의 음반을 선물로 받았다. 런던 보이스(London Boys)는 에뎀 에프라임과 데니스 풀러로 구성된 영국의 유로댄스 듀오인데, 1996년 1월 21일 같은 날 교통사고로 두 사람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음반을 아예 소각해버렸다.

 

강 교수는 사랑이 파탄나는 노래도 절대로 부르지 않았다. 주로 행복한 사랑, 복을 가져오는 찬송가만을 좋아했다. 때문에 이별을 주제로 하는 노래는 부르지 않았다. 윤덕심이 부른 ‘사의 찬미’와 같이 죽을 사자가 들어간 노래는 들으면 소름이 끼친다고 했다.

 

강 교수가 박사까지 딴 다음 매우 고차원의 지식인인 것처럼 위세를 떨고, 잘난 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인은 여전히 옛날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서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않고 있었다. 한국인의 전통과 보수적인 태도를 굳건히 고수하고 있었다.

 

강 교수의 부인 정혜는 워낙 학교 다닐 때부터 책을 싫어했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에도 모든 책은 처음 샀을 때와 똑 같이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노트 필기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과목에 노트는 한 권만 있으면 고등학교 3년 동안 아무 일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정혜의 친구들은 정혜가 수업시간에 전혀 펜을 움직이지 않고 있어서 들으면 모두 자동으로 암기가 되는 천재인 것으로 오해했다. 그런데 중간고사를 보니까 시험지 답안지에도 펜을 아주 최소한 사용했기 때문에 반에서 꼴찌를 한 것을 보고, 정혜가 필기를 하지 않는 것은 암기를 해서가 아니라, 필기할 능력조차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혜는 미술시간에도 물감을 아끼느라고 여백을 많이 남기고 그렸다. 처음에는 미술선생님도 정혜의 그림이 피카소 같은 추상화를 초현대식으로 그리는 독특한 화풍으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게으르고 귀찮기도 하고, 가급적 물감을 적게 쓰려는 심보를 가진 것으로 알고 무척 미워했다.

 

정혜는 이런 연장선상에서 시나 소설 같은 문학에는 아예 취미가 없었다. 시는 김소월의 ‘나보기가 역겨워’ 하나만 알고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초등학교 때 배운 ‘섬그늘’ ‘오빠생각’ 등의 동요가 전부였다.

 

그런 동요도 초등학생들이 부른 것만 좋아했고, 나이 든 가수 이선희나 박인희가 부른 동요는 듣지 않았다. 나이 든 가수가 부른 동요를 들으면 옛날 유치한 감성이 날아가버린다는 이유에서였다.

 

정혜는 영화나 드라마는 아주 좋아했다. 특히 CGV가 등장한 이후에는 관객수가 많다고 하는 영화는 한편도 빠뜨리지 않고 보았다. 드라마도 ‘사랑과 전쟁’을 비롯해서 애정관계를 다루는 것은 모두 보았다.

 

특히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의 이름과 나이, 데뷔연도, 주요 등장작품, 영화 감독의 신상에 대해서는 특별히 노트를 하나 만들어 세세하게 기록해가면서 외웠다. 이렇게 정혜가 영화나 드라마에 관한 필기를 노트에 잘 하는 것을 보고, 강 교수가 그런 방식으로 가계부를 써보자고 제안했다가 그 날 정혜는 흥분해서 하마터면 살고 있는 집에 방화를 할 뻔 했다.

 

갑자기 가스레인지를 켜고 화장지를 찾아서 강 교수는 그 자리에서 살려달라고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다. 정혜의 생각은 그 큰 부자인 친정어머니도 가계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평생 알지 못하고 잘 살고 있는데, 친정집 경제규모가 100분의 1도 안 되는 주제에 무슨 가계부 같은 이야기를 꺼내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돈도 잘 못벌면서 찌질한 인간은 바로 불로 태워서 곧 바로 지옥의 유황불로 직행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강 교수는 정혜 혼자 불을 내서 혼자 죽으려는 것으로 커다란 오해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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