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40)
지금은 세태가 많이 달라졌다. 간통죄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형법상 혼인빙자간음죄도 없어졌다. 결혼하자고 꼬여서 음행의 상습 없는 여자의 정조를 빼앗는 행위를 예전에는 범죄로 규정하고 징역을 보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혼인빙자간음죄도 없어졌다.
혼인빙자간음죄가 없어졌기 때문에, 예를 들면 가짜 의사 행세를 하면서 여자를 꼬여서 결혼할 것처럼 몇 달 동안 육체관계를 하고 나중에 연락을 하지 않는 경우 처벌할 방법이 없다.
설사 검사를 사칭했다고 해도, 검사의 권한을 행사하지 않으면 처벌대상이 아니다. 다만, 그런 거짓말로 여자로부터 정조만 빼앗은 것이 아니라, 돈까지 편취를 했다면, 그것은 정조사기죄가 아니라, 재물사기죄라는 재산범죄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남녀 간의 육체관계가 폭력에 의한 것이 아니고, 성인의 자유의사에 의한 것이면 형법에서 더 이상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이어서, 예전과 달리 현장에서 들킨 간통행위자들도 당당한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간통이 범죄가 아니고, 단지 민사상 위자료만 물어주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통하다 걸리면 기껏해야 1천만원이나 3천만원 정도 물어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돈 있는 사람들도 있다. 더군다나 재산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경제적 무자력자의 경우는 더욱 한심하다.
그 사람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하기도 어렵지만, 위자료 지급을 명령하는 판결을 받아야 강제집행할 재산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그래서 배째라고 나오면 상간자를 상대로 돈을 받아낼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상간자를 때리면 때린 사람만 상해죄나 폭행죄로 형사처벌을 받고, 그에 대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현장에서 들킨 간통행위자들도 당당한 경우가 많다. ‘내가 당신 아내와 성관계를 한 것이 미안하기는 하지만, 범죄는 아니다. 그러니까 억울하면 나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를 하면 되지, 왜 여기 와서 큰소리냐. 이 바보 같은 사람아. 당신이 그런 식이니까 아내가 바람을 피는 것 아니냐? 이혼하면 되지 이런 식으로 해서 여자 마음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이 어리석은 사람아!’
물론 말로 이렇게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상간자는 남편 되는 남자에게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세상이다. 세상이 달라져도 참 많이 달라진 것이다.
그러나 영식과 경희는 달랐다. 영식은 크게 맞는 않았지만 심한 공포심을 느끼며 무한한 절망에 빠졌다. 매우 비참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영식의 아내가 경희문제를 가지고 따질 때, 그만 만날 것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다. 그리고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영식은 현장에서 난리를 치고 있는 경희의 남편이라는 존재를 생각해 보았다. 왜 그렇게 난리를 치는지 이해가 되었다 만일 영식의 아내가 그런 현장에서 발견되었다면 영식도 당연히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아니 영식의 경우는 더 심한 태도를 보였을 것 같았다.
영식은 경희의 남편과 그 일행, 그리고 모텔 종업원, 세 남자를 보면서 오직 자신만이 비정상적인, 나락에 추락한 불쌍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자신은 이미 남자의 대열에서 이탈한 초라한 존재가 된 것이었다.
왜 이런 상황을 만들었을까? 왜 이렇게 추잡한 존재로 추락했을까? 섹스라는 것이 매우 더럽게 느껴졌다. 구역질나는 존재였다. ‘순간적인 쾌락을 위해, 내가 왜 이렇게 위험한 일을 했던 것일까?’
자신은 인격도 없는 아주 하등동물로서 그냥 세포가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존재로 느껴졌다. 사람의 인격은 배우고, 스스로 절제하고, 바르게 살아야 형성되는 것일 뿐 아니라, 옷을 입고, 나체 상태에서 음부를 노출시킨 상태에서는 인격 조차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영식은 지금 인격을 상실한, 아니 애당초 인격이 없었던, 비인격자 내지 무개념자로 전락해 버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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