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3)

은영은 정 사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갑자기 남녀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 사장이 은영의 남자 친구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리고 자칫 잘못하면, 정 사장 눈에 나서, 비서로서 근무하는 것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여자 편력이 많고, 은영 자신도 무슨 사무능력이나 비서경험이 있어서 비서로 근무를 시킨 것도 아니고, 자신이 다른 여자들보다 인물이 좀 낫고, 몸매가 낫기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만일 은영이 혼자 조용히 있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 친구가 있고, 그것도 싱글이 아닌 유부남과 연애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완전히 확인되면, 정 사장 성격에 그대로 둘 것 같지 않다는 위기의식도 느껴졌다.

그래서 은영은 더욱 더 그 자리를 박차고 있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 순현과의 관계도 별로 좋지 않게 된 점도 작용해서 은영은 술에 취하고 싶었다. 그래서 정 사장이 권하면 사양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마셨다.

정 사장도 많이 취하고, 은영도 많이 취한 상태가 되었다. 점점 시간이 흐르자, 은영의 눈에 정 사장이 나이 먹고 늙은 사람이 아니라, 별로 나이 차가 없는 건강한 남자, 멋이 있고, 능력이 있는 남자로 보였다. 성격도 남자 답고 좋아보였다.

정 사장은 운동을 많이 해서 그런지, 팔다리의 근육도 단단해보였다. 그리고 돈이 많아 모든 것이 명품이었고, 옷도 아주 비싼 것만 사입고 다녔다. 심지어 넥타이 하나도 몇십만원씩 하는 외제 명품을 차고 다녔다. 시계는 말할 것도 없이 로렉스 제품 몇천만원짜리였다.

특히 정 사장은 언제나 로렉스 시계를 차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 시계 자랑을 하곤했다. 은영이 사장실에 차를 가지고 들어가도 정 사장은 손님들에게 로렉스 시계가 3천만원 주고 면세점에서 사온 것이고, 그것도 재일교포를 통해 사왔다고 자랑하곤 했다. 왜냐하면 내국인은 그렇게 비싼 시계를 면세점에서 사가지고 들어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밀수에 해당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은영의 눈에 정 사장은 은영의 첫사랑의 남자처럼 오버랩되기도 했다. 또는 지금 만나고 있는 순현의 이미지도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불쌍한 아버지, 어머니, 남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은 내가 이렇게 흐뜨러지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똑바로 행동하고, 나의 몸과 정신을 지키고,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기를 바랄 것이다.’ 이런 생각에 미치자 은영은 순간적으로 술이 깨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일어나려고 했다.

“사장님. 죄송해요.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술이 취해서요. 이만 제방으로 갈게요. 사장님도 이제 술 그만 드시고, 편히 쉬세요.”

은영은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그러자 사장은 가지 말라고 중얼거리면서, 술에 취해 쇼파에 쓰러졌다. 은영은 그런 상황에서 그냥 나올 수가 없었다. 잠시 쇼파에 앉아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사장이 불쌍해 보였다. 나이 든 사람이 회사를 경영하느라고 얼마나 힘이 들까? 스트레스도 많을 것이다. 저렇게 술에 취해 쓰러져 자면 속도 아플 테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래서 은영은 그대로 앉아있다가 사장을 깨워서 침대로 옮겨주려고 했다. 그러다가 은영도 잠시 쇼파에 앉은 채로 잠이 들었다. 한 20분쯤 지나 은영은 화장실에 가려고 잠이 깼다. 화장실을 다녀온 은영은 사장을 흔들어 깨웠다. 자신의 힘으로는 사장을 들어서 옮기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은영이 술에 취한 사장을 은영이 깨우니, 사장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서 은영의 부축을 받고 침대로 이동했다. 그런데 침대에 가서는 은영을 꼭 붙잡아 당기는 것이었다. 은영은 아차 싶었다. 뿌리치려고 했지만 사장의 힘이 너무 강했다.

정 사장은 그러나 침대에 누워 은영의 손만 붙잡고 있었을 뿐,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은영은 정 사장이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하고, 조용히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층 아래 층에 있는 은영의 방으로 들어갔다. 창밖으로 동경의 밤이 눈에 들어왔다. 호텔 주변에는 화려한 네온사인이 많이 켜져있었다.

은영은 사장 앞에서 너무 많이 술을 마신 것도 후회가 되었다. ‘나를 얼마나 우습게 볼까?’ 은영은 술에 취해 샤워도 하지 못하고, 그냥 옷만 벗고 침대에 들어가 골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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