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5)
김 이사는 호텔 프론트 데스크로 가서 직원에게 사고내용을 알렸다. 그랬더니 직원은 호텔에 설치되어 있는 CCTV를 확인시켜 주었다. 정 사장이 머물고 있는 호실 복도와 엘리베이트 주변이 녹화되어 있었다.
“아니, 저건 박 과장 아냐? 이상하다. 왜 밤에 은영이 사장님 방으로 들어가고, 오래 있다가 혼자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기 방으로 가는 걸까?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거구나?”
CCTV를 반복해서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은영은 들어갈 때에는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는데, 나올 때는 정 사장 방에 있던 그 스카프를 메지 않고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치 무슨 도둑처럼 문을 아주 조용히 찬찬히 닫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살펴보면서 엘리베이트로 가는 것이었다. 김 이사는 기가 막혔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다는 말인가? 은영이 얌전한 척 하면서 저렇게 호박씨를 까는 여자란 말인가?
CCTV상에는 은영이 정 사장의 시계나 다른 물건을 들고 나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시계를 손목에 차고 있는 것인지 여부도 확인할 수 없었다. 긴팔의 불라우스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 이사는 정 사장에게 이런 사실을 CCTV에서 확인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호텔 직원은 CCTV를 다 확인한 다음, 호텔 직원은 아무도 그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 준 다음, 상급자에게 말해 상급자와 그 직원 두 사람이 정 사장 방으로 가서 샅샅이 방을 살펴보았다.
“아! 시계가 여기 있네요. 이 시계 맞지요?”
“예. 맞아요. 내 시계예요. 고맙습니다.”
시계는 정 사장이 잠을 잔 침대 위에서 창가 벽 밑으로 떨어져 있었다. 정 사장이 시계를 차고, 침대 위로 올라가서 잠을 자면서 옷도 다 벗고, 시계도 무의식중에 풀어서 침대 위에 놓았는데, 그게 잠을 자는 과정에서 벽 쪽으로 아래로 떨어진 것이었다.
정 사장은 그렇게 아끼고 아끼던 시계를 다시 찾자, 갑자기 어린 아이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환한 웃음을 띠면서 김 이사에게 호텔 식당으로 가서 아침 식사를 하자고 했다.
“어제 밤에 술을 많이 드신 것 같네요. 이렇게 많은 술을 혼자 드셨습니까?”
“응, 어제는 이상하게 술생각이 많이 나서 혼자 늦게까지 마셨어. 지금 속도 좋지 않아. 그래도 식사를 하러 가지.”
김 이사는 쇼파에 놓여 있는 여자 스카프가 은영의 것임을 알았지만, 그것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정 사장과 박 과장이 정사를 벌였다는 증거를 확인하기 위해 휴지통도 보았지만, 성관계 뒤처리를 하는데 사용한 크리넥스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정 사장 일행은 모두 모여서 같이 아침 식사를 했다. 은영도 참석했다. 정 사장이나 은영, 모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다만, 김 이사만 혼란스러웠다.
김 이사나 정 사장 모두 시계사건에 관해서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은영의 스카프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 스카프는 정 사장이 조용히 자신의 짐 안에 넣어두었다. 일행의 스케줄은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특이 사항 없이 무사히 일본 출장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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