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56)
명훈 엄마는 명훈이 현재 처해있는 사정을 이야기 듣고 심한 충격에 빠졌다. 누나는 그렇지 않은데, 명훈이는 어려서부터 부모 말을 듣지 않고,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고, 늘 부모 속을 썩이며 살았다. 아빠도 열심히 살고, 엄마도 열심히 살았는데, 도대체 명훈이는 누구 피를 닮아서인지 성격도 이상하고, 게으르고, 책임감도 없었다.
하지만, 명훈 엄마는 약사로서 개업해서 돈도 잘 벌고 있었고, 사회생활을 많이 해본 경험이 있어 아들 문제를 해결할 자신감을 가졌다.
명훈 엄마 역시 대학교 졸업할 무렵 어떤 남자 친구에게 깊이 빠진 적이 있었다. 그 남자는 공대를 다니고 있었다. 성격이 차분하고, 매사에 진지했다. 처음 3개월 동안 데이트를 하면서도 손 한번 잡지 않았다.
명훈 엄마에게 잘 대해주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은 한번도 꺼내지 않았다. 그야말로 이심전심이었다. 부처님의 염화시중과 같은 미소로 가슴에서 가슴을 전하는 남자였다.
명훈 엄마는 이 남자를 너무 사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술을 많이 마시고, 한적한 공원으로 가서 벤치에 앉았다. 늦은 가을이었다. 은행나무잎이 떨어져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누런 색은 황금을 연상시켰다.
그 남자의 흰 티셔츠가 수은등에 반사되어 파랗게 형광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는 손에 아메리카노를 들고 있었다. 휴대용 커피잔은 분홍빛이었다.
명훈 엄마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남자의 어깨에 기댔다. 그의 숨결이 느껴졌다. 눈을 감았다. 약간 선선했지만, 가슴은 따뜻했다. 그러면서 그 남자의 아이를 잉태하고 싶다는 모성을 느꼈다.
아주 이상했다. 그 남자와 관계를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아이 생각을 하다니, 그것은 인간의 내면에 숨어있는 본성인 것 같았다. 그 후 명훈 엄마는 꿈속에서 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자신을 두 세 번 보았다. 배가 불렀다.
그리고 그 뱃속에 들어있는 존재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강아지 같기도 했다. 태아는 외눈박이 같이 보였다. 꿈에서 깬 명훈 엄마는 무척 놀랐다. 상상임신도 있다는데, 내가 혹시 그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 임신한 것이 아닐까?
그 후 그 남자와 헤어지고 나서, 명훈 엄마는 더 이상 그 남자를 사랑하지도 않고, 생각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서 여자가 임신하는 것은 사랑 때문이고, 사랑이 깨지면 임신도 망각되고 무의미해지는 것이라고 믿었다.
때문에 지금 명훈이 애를 가졌다는 여자의 철없는 행동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의미가 없는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쉽게 생각했다.
명훈 엄마는 아빠에게 명훈 문제는 자신이 알아서 해결할 테니, 모든 걸 자신에게 맡기라고 이야기했다. 명훈 아빠는 명훈 엄마의 실력을 믿었다. 돈은 얼마든지 써도 좋으니, 빨리 해결하라고 했다.
명훈 엄마도 이런 경우에는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답했다. 역시 돈이 있는 사람들이라, 돈이면 만사가 형통이고, 세상사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고,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그것은 돈을 많이 가져보지 못한 낙오자들, 돈의 효험과 위력을 경험해 보지 못한 무능력자들이 내뱉는 푸념 정도로 치부하고 말았다.
명훈 엄마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우선 지현을 자신이 직접 만나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이 지난 다음, 명훈 엄마는 지현의 핸드폰으로 연락을 해서 지현을 만났다.
지현은 명훈 엄마가 자신을 만나자고 하는 말에 들떴다. 직접 만나 자신의 배를 보고, 대화를 해보면, 명훈 엄마도 지현을 며느리 삼고 싶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명자에게 이런 사실을 말했다. 그랬더니 명자는 지현이 혼자 나가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자신이 따라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현은 명자는 나와서는 안 된다고 했다. 공연히 일을 그르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단 명자는 물러섰다. 다만, 언제 어디에서 만나려고 한 것인지에 관한 정보만 알려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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