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58)

더 이상의 대화는 불가능했다. 명훈 엄마는 난감했다. 지금까지 단골로 다니는 신라호텔에서 망신을 당하게 되었다. 그래서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약속 때문에 가봐야겠다고 했다. 지현은 먼저 가시라고 했다.

명훈 엄마가 간 다음, 지현은 울음을 멈추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지금까지 명훈과 만나면서는 그렇게 심한 격차를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명훈 엄마를 만나보니 지현과 그들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의지로 어떻게 해도,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과 건널 수 없는 깊은 강이 가로 놓여 있었다. 그 산과 강은 자신의 목을 짓누르고, 가슴에 통증을 주는 보이지 않는 멍에로 생각되었다.

명훈 엄마는 지현을 만나보고 나서, 그녀를 어린 명훈을 꼬셔서 성관계를 하고 아들 모르게 임신한 다음 돈을 뜯어내려는 꽃뱀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명훈 아빠는 고등학교 동창으로서 판사생활을 하다가 변호사를 잘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 명훈 문제를 상의했다.
“여자 아이가 결혼시켜 달라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면서 아이를 낳아서 혼자 키우겠다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최 변호사는 눈을 껌벅이면서 난감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거 보통 문제가 아니네. 결혼을 시킬 수는 없는 거고. 만일 돈으로 해결이 되지 않아서 그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자네 아들은 그 아이의 부(父, father)가 되는 거야.”

“아니 무슨 근거로 우리 명훈이가 그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거지?”
“법으로는 그 아이가 명훈을 상대로 친생자확인소송을 걸어서 DNA검사를 해서 승소판결을 받으면 그 아이는 명훈이 가족관계증명부에 친생자(親生子)로 등재가 되는 거야.”
“그렇게 되면 명훈이 낳은 자식이라고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게 되는 거네?”

“당연하지. 그리고 명훈이는 그 아이에 대한 부양료를 19세까지 아이 엄마에게 지급해야 해. 뿐만 아니라 나중에 자네 아들이 사망하면 그 아이는 명훈이의 상속인이 되는 거야.”
“뭐라고! 그럼 내 재산을 우리 아들이 다 물려받게 될 텐데, 그 재산을 그 아이가 나중에 또 다 물려받게 된다는 거야?”

“그게 우리나라 상속법이야. 그리고 자네 아들 공부상에 아이를 낳은 아빠로 표시가 되는데 결혼하는데도 애로사항이 생기지.”
“정말 큰일이네. 명훈이 인생이 망가졌네.”
“그러니까 빨리 돈을 주고 해결해. 낙태수술 하는 방법밖에 다른 도리가 없어. 실제 우리 사회에는 이런 사건이 드물게 있어. 여자가 나쁜 마음을 먹으면, 남자는 골탕을 먹게 되어 있어. 자네 아들이 잘못 걸린 거야. 나쁜 여자한테.”

변호사는 법을 공부한 지성인인데 꼭 이런 식으로밖에 답변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여자야 죽든 말든 자신의 친구인 명훈 아빠를 위해 매우 일방적인 방법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지현이 그 변호사의 딸이거나, 명훈 아빠의 딸이었다면 이런 식으로밖에 해결할 수 없다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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