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59)

지현은 자신의 처지가 한없이 슬펐다. 그리고 몹시 분개했다. 명훈 엄마가 보여준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경위야 어찌되었든, 현재 자신은 명훈 엄마의 손자나 손녀를 잉태한 사람이다.

명훈이 2대 독자인데, 나중에 이 아이가 명훈 집안을 이어받을 것인데, 어떻게 만나자마자 상세하게 전후 스토리를 들어보려고 하지도 않고, 무조건 ‘네가 잘못했으니, 빨리 없애버려라. 그리고 결혼은 절대로 안 된다.’고 선언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돈봉투를 던져놓고 가버리는 것일까?

이것은 인간적으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명훈 엄마를 가만두지 않더라도 명훈씨만큼은 사랑하고, 아이의 아빠니까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지현의 심정이었다.

지현은 명자를 만났다. 명자는 지현으로부터 명훈 엄마를 만나서 있었던 말을 듣고 몹시 흥분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곧 바로 명훈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당장 나오라고 했다. 그러나 명훈은 부모와 상의한 다음 연락을 주겠다면서 전화를 끊고 더 이상 명자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명자와 지현은 명훈 아버지 회사에 가서 플랭카드를 걸어놓고 시위를 하는 방법, 명훈이 다니는 대학교 총장에게 진정서를 내는 방법, 명훈을 만나서 폭행하는 방법 등을 상의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효과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지현은 어떤 결정도 할 수 없었다. 아이는 자꾸 안에서 자라고 있고, 정말 아이를 낳을 것인지도 시간이 가면서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명자는 옆에서 보면서 지현이 너무 불쌍해보였다. 그냥 아이를 지워버리고 다른 남자를 만나지, 저런 나쁜 인간들과 하나의 생명인 태아를 가지고 흥정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지현에게 참고 잊으라고 하기에는 지현이 너무 깊이 빠져들어가 있었고, 도저히 명자의 말을 들을 것 같지 않았다.

지현을 만나서 지현의 생김생김과 말하는 수준, 아이를 절대로 수술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파악한 명훈 엄마는 비로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자칫 잘못 대처했다가는 아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게 뻔했다.

그렇다고 수준이 안 맞는 천한 지현을 며느리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차라리 전쟁이 나서 죽을지언정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해서 서울에서도 내놓을만한 집안을 일구어놓은 입장에서는 집안의 수치라고 생각되었다.

명훈 엄마 생각으로는 빨리 지현을 정리하고 지금 명훈이 만나고 있는 돈많고 인물 좋고, 집안이 좋은 제니를 며느리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지난 번, 제니를 한번 만나 본 다음, 정말 자기 아들이었지만 명훈이 공부만 빼고는 남자로서 모든 것을 갖춘 아이구나 하는 믿음이 갔다.

그래서 몇 년 동안만 여자를 만나지 않고 지내고 있으면, 자신이 명훈에게 정말 좋은, 모든 조건을 갖춘 여자 아이를 구해주려고 했는데, 지금 문제가 생겼으니, 차제에 제니와 붙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작은 운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9. 항공사 승무원만 보면 사죽을 못쓰는 남자  (0) 2021.01.20
작은 운명 (60)  (0) 2021.01.20
작은 운명 (58)  (0) 2021.01.20
작은 운명 (57)  (0) 2021.01.19
작은 운명 (56)  (0) 2021.01.1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