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항공사 승무원만 보면 사죽을 못쓰는 남자

 

미경은 오빠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황당했다. 오빠 선상수는 10개월 전에 친구 소개로 방암내를 만났다. 상수는 55살이었는데, 부인이 죽고, 외롭게 혼자 살면서 매일 저녁 술이나 먹고 건강관리를 잘 못하고 있으니까 불쌍하다고 생각한 고등학교 친구가 방암내를 오빠에게 소개해주었다.

 

방암내는 58살이었는데, 20년 전에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었다. 아들 한명이 있었는데, 전 남편과 같이 살면서 전혀 왕래가 없었다. 암내는 몸매가 예쁘고 동안이어서 40살도 안 되어보였다.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데, 어떤 사람은 그 냄새를 국화꽃향기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밤꽃 썩는 냄새라고도 했다. 어떤 사람은 해방 직후 싸구려 그루므를 바른 것 같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설거지할 때 밴 냄새라고도 했다.

 

사람들은 암내 부모가 향기가 나도록 간절히 소원하면서 딸 이름을 ‘암내’로 지은 것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것은 사실과 달랐다. 전화번호부를 아무리 뒤져봐도 이름이 ‘암내’로 된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아마 호적제도가 생기고 유사 이래 처음 등장한 이름인 것 같았다.

 

암내 아버지는 젊었을 때부터 항공사 스튜어디스를 좋아했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어떤 스튜어디스든지 간에 넋이 빠지도록 쳐다보고, 또 쳐다보았다.

 

특별히 마음에 드는 스튜어디스를 만나면, 일부러 자꾸 승무원 호출벨을 눌렀다. 물을 달라고 하든가, 머리가 깨질 것 같으니 비상약을 달라고 했다. 기내식을 먹을 때에는 1회용 고추장을 여러 번 달라고 했다.

 

비행기를 생애 처음으로 타는 것처럼 기내 화장실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고, 또 화장실 문 여는 방법을 모른다고 내숭을 떨면서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화장실에서 나올 때도 안에서 인터폰으로 승무원을 호출해서 혼자 힘으로는 문을 열지 못하니 밖에서 열어달라고 했다.

 

자꾸 귀찮게 하니까 그 다음부터는 여자 승무원이 오지 않고, 남자 승무원이 왔다. 그때부터는 더 이상 승무원을 부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면 밖의 경치를 보려고 창가석을 선호하는데, 아버지는 꼭 복도석에 앉아 여승무원의 엉덩이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오른쪽 다리를 복도쪽으로 내놓아서 여승무원 다리에 닿게 했다. 그러면서 일부러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

 

어떤 여승무원은 아버지의 섬광처럼 예리하고 날카롭고 뜨거운 눈빛에 오래 맨다리를 쏘여서 1도 화상을 입은 적도 있었다.

 

아버지는 꼭 한국 여승무원에게만 눈독들 들였지, 외국 항공사 여승무원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게 다행이었다. 만일 외국 항공사 소속 여승무원에게 그런 식으로 추태를 부렸다가는 성추행범으로 교도소에 쳐박혀서 기름 냄새가 배인 곳에서 김치는 구경도 하지 못하고 느끼한 음식만 먹다가 체중이 삼분의 일로 줄었을 것이었다.

 

이러한 화려한 왕년의 경력 때문에 아버지는 첫딸을 낳았을 때, 이름을 스튜어디스로 지으려고 했다. 그랬더니 주변에서 그건 너무 부르기가 어렵고 쓰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딸과 같이 비행기를 타고, 딸 이름을 “얘, 스튜어디스야!”라고 큰 소리를 몇 번 불렀다가는 60살이 넘은 고참 승무원에게 반말로 희롱하는 것으로 고발을 당하거나, 아니면 모처럼 광내려고 비즈니스석에 앉았다가 강제로 이코노미석으로 옮겨가야할 것이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주변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딸 이름을 ‘스튜디어스’라고 호적에 올리려고 작정을 하고 구청에 갔는데, 구청 담당자가 영어로는 못올리며 또한 이름을 다섯자로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기에 하는 수 없이 즉석에서 ‘승무원’이라는 이름을 생각해냈다.

 

그래서 ‘방승무원’으로 하려고 했는데, 아버지 뒤에서 마침 다른 일 때문에 와서 기다리던 항공사 승무원을 지내고 은퇴한 여자가 그런 이름을 지으면, 나중에 딸이 커서 승무원으로 취직할 때 곤란할 것이라고 예언을 해주어서, 아버지는 그 이름도 포기했다.

 

아버지는 결정을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일주일 간 금식을 하면서 딸 이름 가지고 고민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가장 근접한 ‘안내’로 결정했다. 영어로 번역하면, information 이었다. 그래서 ‘방안내’로 신고를 하려고 했는데 누가 실수한 것인지 호적에 ‘안’자가 ‘암’자로 올라갔다.

 

방암내는 이런 우여곡절을 겪어서 이름을 얻었는데 학교 다닐 때에는 친구들이 자꾸 ‘암내야’ 또는 ‘암내’라고 부르면 주변 사람들이 무슨 이상한 냄새가 나는 여자인줄 오해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발정기인 ‘암컷 동물’인줄 착각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그냥 ‘내’로 불러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친구들이 ‘내’라고 하면, 암내를 부르는지, 자기 자신을 말하는지 헷갈려서 많은 사연이 생겨났다. 가령 학교에서 도난사고가 났는데, ‘내가 도둑질했다’고 하면 말하는 학생이 자신이 직접 도둑질을 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내(암내의 약칭으로서 방암내를 가르킴)가 도둑질을 한 범인이다”라는 것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또는 “내가 남자 친구와 잠을 잤다”고 하면 말하는 여학생이 잠을 잔 것인지, 내(방암내)가 잔 것인지 모호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방암내는 나중에 스튜어디스가 되려고 학원을 다녔다. 방암내는 열심히 공부를 해서 항공사에 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았는데, 면접 시간에 이름에 대해 이야기가 나와서 화제가 되었다. 결국 암내는 불합격되었는데, 지금도 그 원인을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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