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62)

낙태에 대해서는 명훈 엄마 역시 약사로서 반대하는 강한 개인적인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명훈 엄마도 어렸을 때부터 모태신앙으로 성당에 다니고 있었다. 특히 약학을 공부했고 약사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은 한번도 원치 않는 임신을 하지 않았다. 워낙 피임을 잘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낙태도 하지 않았다.

명훈 엄마도 결혼 전에 현재의 남편 이외의 다른 남자들과 관계를 가진 사실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약대생으로서 누구보다도 피임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기 때문에, 절대로 임신의 위험성 있는 성관계는 하지 않았다. 결혼한 후에도 명훈을 낳고 더 이상 임신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다음에도 아주 철저하게 피임을 했다. 그래서 한번도 실패를 하지 않는 성공률 100%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일을 당하자 갑자기 낙태는 허용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가졌고, 낙태죄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게 되었다. 도대체 여자가 어리슥한 남자와 몇 번 잠자리를 하고, 아이를 임신해서 평생 팔자를 고치겠다는 나쁜 의도에서 아이를 꼭 낳아야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지금까지 낙태를 허용하자는 사람들은 인간의 어리석은 임신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구원자의 목소리였다. 반면에 낙태를 허용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현실을 너무 모르고, 자기 일이 아니라고 하는 무책임하고 공허한 메아리였다.

명훈 엄마는 자신의 아들 문제가 되자, 원치 않는 임신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생각하게 되었고, 만일 낙태를 하지 않고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 아이 때문에 겪을 고통과 불행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명훈 아빠가 바람을 피면서 다른 여자들로 하여금 낙태를 하도록 한 경험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명훈 엄마는 모르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것은 다른 여자의 문제이지, 자신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살았다.

그런데 자기 아들의 정자가 못된 여자의 난자와 만나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냥 지저분하고 용납 못할 저급한 인간의 행동이라고 생각하였다. 인간은 이처럼 자신의 일과 남의 일을 엄청나게 다른 잣대로 판단하고 평가한다. 그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모든 인간의 불행은 바로 이런 이중잣대로부터 비롯된다.

며칠 후 명훈 엄마는 다시 지현을 만나기로 했다. 이번에는 고급 일식당으로 약속 장소를 정했다. 지현은 친구 정숙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명품 옷과 명품 백, 귀걸이 등을 빌렸다. 정숙은 지현의 고등학교 친구로서 부잣집으로 시집가서 잘 살고 있었다. 지현과 정숙은 고등학교 때부터 둘도 없는 친한 사이였다. 서로의 모든 속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지현이 처음 남자를 알게 된 것도 정숙의 애인에게 당한 것이었다. 정숙은 자신의 남자 친구로부터 지현이 강간 당한 사실을 알고, 자신의 애인인 남자를 지현과 같이 만나서 소주병으로 머리를 쳐서 상해를 입히기도 한 의리파였다.

지현이 정숙의 애인으로부터 강간을 당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정숙은 지현을 의심했다. 그것은 정숙의 남자 친구가 지현을 강간해놓고, 정숙에게는 지현이 자신을 유혹해서 하는 수 없이 넘어간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숙이 지현으로부터 상세한 사건 경위를 들어보니, 사실은 그 남자가 지현을 강압적으로 강간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세 사람이 만나 정숙으로부터 소주병으로 머리를 세게 맞아 피까지 흘리면서도 그 남자 친구는 지현을 강강한 사실을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가 만일 강간을 했으면, 왜 지현에게 상처가 없었느냐? 그리고 여자가 끝까지 반항하면 어떻게 남자가 삽입을 할 수 있느냐? 지현이 동의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 것이다. 나를 믿어달라. 나는 정숙이만 사랑한다.’고 강변했다.

정숙은 그 남자가 아무리 그렇게 말을 해도, 믿지 않았다. 그리고 정숙은 그 남자와 관계를 끊었다. 지현과 정숙은 그러한 일이 있고 나서 더 친해졌다. 두 여자가 한 남자와 비록 따로 따로 있었던 일이고, 서로의 의사연락이나 인식은 없었지만, 동일한 남자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상호관련성을 가지게 하고, 무엇인가 동질성을 공유하는 것처럼 느끼게 했는지 모른다.

지현에 대한 것은, 그것이 강간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 모른다. 아무튼 정숙은 자신이 남자 친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지현의 처녀성을 상실시킨 데 대해 그때는 무척 미안해했다.

언젠가는 정숙은 지현에게 이렇게 묻기도 했다. “그 남자가 여자를 잘 다루고 테크닉도 좋았는데, 너는 어땠어? 좋았어?” “무슨 미친 소리야? 나는 강제로 당했던 거고, 그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무엇이 무엇이었는지도 전혀 기억 못해. 그 남자는 동물 같은 X이야.”

그 일 이후 물론 정숙은 그 남자 친구와 헤어졌고, 다른 남자 친구를 만날 때는 절대로 지현을 비롯해서 자신의 여자 친구를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여자가 애인을 만날 때, 친한 여자 친구를 데리고 가는 것은 잘못하면 자신의 애인을 여자 친구에게 빼앗길 위험이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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