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65)
세 사람은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현과 명자는 불편한 자리였지만, 워낙 고급스러운 일식당에서 최고급 사시미와 정종을 먹고 좋은 대접을 받으니 기분은 좋았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이런 고급 사시미를 먹어볼까? 그리고 지현은 잘 먹어야 명훈씨 2세를 튼튼하게 낳을 것이라고 믿었다.
“차 안 가지고 왔지요? 내 차로 모시도록 할 게요. 나는 다른 약속이 있어서 여기 좀 더 있다가 갈 게요.”
“아니예요. 저희들끼리 가겠습니다.”
“아니, 타세요. 나는 어차피 여기 더 있어야 하니까. 우리 기사가 모셔다 드리도록 할 게요.”
곧 벤츠 차량이 왔고, 은영과 명자는 거의 강제로 떠밀리다시피 차에 올라탔다. 벤츠 600이었다. 길거리에서도 잘 못보던 차였다. 사실 벤츠 600은 비싸서 웬만한 사람은 사지 못한다.
너무 강하게 권하니까 얼떨결에 떠밀려 들아가다시피 타게 되었다. 그리고 차는 출발했고, 명훈 엄마는 손을 흔들고 다시 일식당으로 들어갔다. 누구를 만나기로 한 것인지 궁금했지만, 어쨌든 오늘 만나서 지현의 입장을 명확하게 표시했으니, 알아서 할 거라고 믿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양복을 깔끔하게 입은 기사가 물었다.
“봉천동으로 가주세요. 고맙습니다.”
기사는 친절하게 뒤를 돌아다보며 가벼운 미소를 띠었다. 순간 지현은 기절할 뻔했다. 그 기사는 바로 그 남자였다. 친구 정숙의 애인이었던 순철이었다. 지현을 강간하고 끝내 거짓말로 화간이라고 우기던 사람, 그 인간성 나쁜 인간이었다. 그런데 오래 된 일이라 그런지 순철은 지현을 정확하게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지현은 그 남자를 대번 알아보았다. 그는 체격이 좋고 얼굴도 잘 생겼다. 하지만 지현을 강간하고 무책임하게 거짓말하고 달아난 악마였다. 순간적으로 지현은 얼굴이 흥분해서 빨갛게 되었다. 옆에 있는 명자는 영문도 모르고, 술기운이 올라와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현은 생각했다. ‘‘이걸 어떻게 하지? 아냐 저 X이 나를 알아보면 큰일인데, 오래 돼서 나를 못알아보는 것 같으니 다행이다. 나도 모른 척하고 내려야겠다.’
지현은 명자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 이름을 부르면 안 돼. 내가 아는 사람이야. 조용히 있다가 빨리 내리자.”
봉천동에서 내리면서 지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둘러 내렸다. 기사와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애썼다. 지현은 내려서 커피를 마시면서도, 명자에게도 더 이상 그 기사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한편 명훈은 요새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 이렇게 재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까? 못 생겨서 밥맛인 지현과 당시 이상한 상황에서 몇 번 데리고 놀았다는 이유로, 이렇게 개망신을 당하게 되었다. 스타일을 완전히 구겨버렸다.’
그리고 새로 만나 마음에 드는 돈 많은 집 아이인 제니도 이번에 지현이가 난리를 치는 바람에 요새는 전화도 받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고 있는데, 명훈이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예전처럼 가까운 친구들과 이태원 클럽에 가서 놀고, 자유분방한 여자들과 노는 것밖에 할 일이라곤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까운 남자 친구 형석과 강남에 있는 클럽에 갔다. 웨이터의 소개로 두 여자를 합석해서 꼬셨다. 그 중 한 여자가 마음에 드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술을 마시고 일행 네 사람은 밖으로 나와 2차로 술을 마셨다.
모두 다 술을 많이 마셔서 취한 상태가 되면서 헤어져야 하는데, 명훈은 파트너에게 자신은 술에 취해 도저히 움직이지 못하겠으니, 클럽에 붙어있는 호텔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수고비로 10만원을 주었다.
여자 입장에서는 테이블에서 워낙 명훈과 남자 친구가 돈이 많고 능력 있다고 허풍을 떨었기 때문에 잘 대해주는 게 좋다는 생각에서 호텔까지 데려다 주려고 따라갔다. 호텔 방에 들어가자 명훈은 조금만 이야기하다가 가라고 애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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