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67)
명훈이 피해자의 여자 친구가 불러주는대로 사실확인서를 다썼더니, 이름 위에 손도장을 찍으라고 했다. 인주는 부근에 있는 편의점에서 아주 작은 것을 사왔다. 명훈은 그런 인주통은 처음 봤다. 너무 작고 예뻤다. 지장을 찍기 전에 망설였다. 겁이 났다.
“삽입은 하지 않았고, 사정도 하지 않았는데요? 고쳐주세요.”
“이 미친 X이 어디 대고 주둥이를 놀려? 내 친구가 당했다고 말하는 거 다 들었잖아? 귀가 처먹었나? 거짓말을 아주 밥먹듯이 하는구나. 그럼 경찰에 가서 정식으로 조사를 받아볼까? 조용히 합의하는 것이 좋지 않아? 안 그래 이 나쁜 XX야!”
여자 친구는 정말 경찰 출신이거나 남편이 현직 경찰관인 것이 틀림없었다. 여자 친구는 증거로 필요하니 명훈의 머리카락을 조금 잘라서 달라고 했다. 그러더니 명훈의 승낙이나 동의도 받기 전에 그냥 명훈의 머리를 잡고 한줌 뽑았다. 명훈은 눈물이 났다. 무지하게 아팠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냥 맞아는 봤지만, 머리카락을 강제로 뽑혀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세상에 남자 머리도 뽑는 사람이 있구나!’
여자 친구는 그것을 비닐봉지에 조심스럽게 담았다. 명훈은 TV에서 강간범의 수사에 있어 DNA검사를 한다고 하면서 남자의 정액이나 침 같은 체액, 또는 머리카락, 음모 등을 채취한다는 것을 들어는 보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이 아줌마가 무슨 권한으로 갑자기 강제수사를 하는지 전혀 영문을 몰랐다.
그래도 만일 명훈이 그 여자의 횡포에 이의를 달면 당장 파출소로 가자고 할 판이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당하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명훈은 아직도 술이 완전히 깬 상태는 아니었다.
마치 꿈 속에서 어떤 여자들과 대화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희미한 의식 속에서 명훈의 옆에는 순한 양도 몇 마리 뛰어놀고 있었다. 그런데 낯선 뱀 두 마리가 슬슬 기어오고 있었다. 뱀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명훈의 아래 물건을 향해 돌진하는 것이었다. 명훈은 소스라쳤다. 다시 눈을 떠보니 그 여자 두 사람이 명훈을 불쌍하다는 듯이 비웃고 있었다.
명훈은 지루하고 지겨웠다. 다 끝난 줄 알고 일어나려고 했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명훈에 대한 상세한 인적 사항, 개인정보를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백지에 적고 있었다. 녹음까지 하고 있었다.
생년월일, 주소, 부모 성명, 나이, 직업, 재산 정도, 성병 유무, 자동차 종류, 연식, 여자 친구 관계, 학교 이름, 과 명칭 전화 번호 등등 수없이 많은 사항을 물었다.
명훈이 대답을 하지 않거나 엉터리로 답변을 하면 여자 친구는 곧 바로 112신고를 할 태세였다. 명훈은 완전히 겁을 먹고 강제수사(?)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은 운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운명 (69) (0) | 2021.01.25 |
---|---|
작은 운명 (68) (0) | 2021.01.24 |
작은 운명 (66) (0) | 2021.01.24 |
작은 운명 (65) (0) | 2021.01.24 |
작은 운명 (62) (0) | 2021.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