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5)
통영이 구속된 사연은 이랬다. 통영은 자가용도 없는 처지에 늘 신라호텔과 하얏트호텔에 가서 살았다. 하루는 신라, 하루는 하얏트에 가서 놀았다. 물론 하루에 드는 비용은 로비라운지에서 마시는 커피값이다.
식사는 호텔 밖에 나가서 싸구려 점심을 먹었다. 편의점에서 간단히 김밥을 먹거나, 라면을 먹었다. 하지만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 입고 세련된 매너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에 비해 매우 젊어보였다.
남자가 젊어보이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 꿈을 꾼다. 하지만 젊어보여서 열심히 사회생활을 하면서 도움이 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남자가 제 할 일은 하지 않고 여자를 꼬시거나 사기를 치려고 젊게 보이려고 하는 것은 곧 독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오는 법이다.
통영은 기본적인 생활영어를 원어민 발음으로 하고, 일부러 한국말은 서툰 것처럼 더듬더듬했다.
통영이 중학교 다닐 때 가장 자신 있었던 과목은 국어였고, 수학이나 영어는 거의 빵점 수준이었지만, 사회에 나와서 사기를 치려고 마음 먹으니 고의로 한국어는 서툴게 해서 재미교포인 것처럼 하고, 영어는 읽을 줄은 모르지만, 아주 간단한 인사말이나 영화나 소설의 주인공 이름은 네이티브 스피커처럼 발음할 수 있도록 피나는 노력을 반복했다.
예를 들면, Good Morning을 발음할 때 보통 사람은, ‘굿 모닝’이라고 한다. 그런데 통영은 일부러 모닝의 ‘r’발음을 길게 함으로써 표를 내는 것이다. 즉, ‘굿 모오오닝’ 이렇게 명확하게 ‘r’이 들어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그래야 ‘morning’이 ‘moning’과 발음상 구별되는 것이다.
통영은 호텔 로비에서 밖을 내다보면서 유심히 살펴본다. 외제차를 손수 운전하고 내리면서 발렛 파킹을 맡기는 여자만 특별히 관찰한다. 그런 다음 그 여자가 호텔에서 볼일을 마치고 다시 돌아가는 시점에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재미교폰데, 잠깐 여쭤봐도 될까요?”
“예.”
“제가 양수리를 가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가면 좋을까요?”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미안합니다.”
물론 이것은 처음 수작에 불과하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는 호텔에서 경기도 양수리 가는 길을 지도를 펼쳐놓지 않고 안내를 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군대에서 독도법을 열심히 배워서 향도 역할을 3년간 했던 사병 출신 남자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이런 길을 묻는 사람이 있는 것이 세상이다. 맹사장도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떤 남자가 종로 거리를 걷고 있는데, 어떤 미모의 젊은 여성이 길을 물어왔다.
“여기서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자 질문을 들은 남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글쎄요. 아마 택시를 타고 가는 데 좋지 않을까요?“
여성은 고맙다는 듯이, ”예, 잘 알았습니다.“
통영은 양수리 가는 길을 몰라서 묻는 게 아니다. 이미 그곳에 수십차례 가보았던 사람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어렵고 말도 되지 않는 질문을 던져놓은 것은 낚시꾼이 미끼를 던져 놓는 것과 같다.
벤츠와 비엠더블유, 아우디 같은 외제차를 발렛으로 맡기고 한국의 상류층을 자처하는 괜찮은 여성들이 나타날 때마다 통영은 비슷한 질문을 한 다음, 계속 로비 주변을 서성인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사기꾼은 우선 머리가 좋아야 하고, 기억력이 탁월해야 한다. 머리가 나쁘거나, 둔하거나, 눈치가 없는 사람, 기억력 뇌세포인 해머 부분이 하얗게 변해서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절대로 남을 속여서 돈을 벌 수 없다.
자기 자신의 몸똥아리도 제대로 콘트롤 못하는 주제에 똑똑한 타인을 움직여 그의 지갑에서 돈을 빼낼 수는 절대로 없는 것이다. 그것은 병약한 말을 타고 눈이 쌓인 알프스 산맥을 넘으려는 바보처럼 실패하고 감방에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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