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30)

명훈 아빠는 또 다시 검찰청에 출석했다. 이번에도 역시 변호사를 대동하고 갔다. 돈도 있었지만, 역시 검찰에서 특별수사를 할 때는 반드시 변호사를 데리고 가서 참여시키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원래 수사기관에서 피의자로 조사를 받게 되면, 수사관은 제일 먼저 피의자에게 ‘귀하는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고,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고지해준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은 이러한 고지내용을 빠른 속도로 듣고, 지나가는 말로 간단하게 생각하고 넘어간다.

진술거부권과 변호인 조력권은 결코 간단한 권리가 아니다. 피의자나 피고인, 범죄혐의자는 묵비권과 진술거부권을 가진다. 또한 자백을 강요 당하지 않을 권리도 가진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범죄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 것도 형사소송법상 권리에 해당한다.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라는 것도 그렇다. 간단한 사건이라면 몰라도, 처음 검찰 조사를 받는 사람은 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변호사를 참여시키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다. 일반인은 경찰이나 검찰청에 가서 피의자의 신분으로 앉아 있으면, 처음부터 기가 죽게 되고,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공황상태에 빠지게 된다.

검사는 사전에 고소인이나 참고인, 또는 제보자들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조사를 해놓고, 그런 다음 피의자를 소환하는 것이기 때문에 검사가 갑자기 이런 저런 질문을 하면, 피의자는 당황하게 횡설수설하게 된다.

변호인 참여의 의미는 이렇다. 변호사가 피의자신문과정에 참여한다고 해도, 민사소송과 달라서 형사사건에서는 변호사가 피의자를 대신하여 조사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진술이나 답변은 피의자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 그리고 변호사는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을 뿐, 그때 그때 피의자가 답변해야 할 사항을 코치하거나 어드바이스하지 못한다.

다만, 피의자가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으면, 잠시 휴식시간을 요청하여 그 때 피의자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조사가 끝난 다음, 피의자신문조서를 읽어보고 제대로 기재가 되었는지 여부를 확인해 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조사한 바에 의하면, 피의자는 시청 공무원에게 돈을 준 정황이 많이 드러나고 있어요. 공무원에게 돈을 준 것을 사실대로 이야기해요. 그렇지 않으면 이 수사가 언제까지 갈 지 모르고, 회사는 부도날 위험이 있잖아요. 자꾸 공무원을 감싸고 들다가 본인에게 큰 피해가 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저는 정말 시청 공무원에게 돈을 주지 않았어요. 그리고 제가 왜 돈을 줍니까? 적법하게 건축허가를 받았고, 설계사무소를 통해 허가를 받은 거예요. 저는 부정한 청탁을 한 사실도 없고, 뇌물을 준 사실은 절대 없어요.”

검사는 공무원과의 만난 사실에 대해 꽤 상세하게 파고 들었다. 일부 공무원들은 명훈 아빠 아닌 다른 업자들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적은 금액이나마 밝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검사는 명훈 아빠가 회사 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업무상 횡령 부분에 대해 계속해서 조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피스텔을 사서 살게 해준 애인인 술집 마담까지 소환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단순한 참고인이기 때문에 강제수사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들어 변호사가 출석하지 않겠다는 사유서를 써서 내고 나가지 않았다.

검찰 수사가 계속되자, 명훈 아빠는 변호사에게 말했다. “도저히 안 되겠어요. 일단 일본으로 나가 있다가 수사검사가 인사이동으로 다른 곳으로 전근가면 그때 들어와 조사를 받겠습니다.”
변호사는 난감했다. “글쎄요. 해외로 나가있으면, 그 동안은 공소시효가 정지됩니다. 그리고 도주한 것으로 보아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도 있어요.”

“그래도 지금처럼 검사가 강하게 수사를 계속하면 저는 구속되고 회사는 부도나게 돼요. 제가 밖에서 수습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명훈 아빠는 검사에게 출석하기로 약속한 날 전날, 간단한 짐을 싸가지고 일단 일본으로 출국했다. 다행이 검찰에서 명훈 아빠에 대한 출국금지조치는 해놓지 않고 있었다. 검사는 명훈 아빠가 그동안 순순히 조사에 응하는 것으로 보아 해외로 도피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출국금지를 신청하지 않았던 것이다.

명훈 아빠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출국금지조치가 되어 있는 지 여부를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직접 가서 확인해보았다. 신분증만 가지고 본인이 가면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출국금지가 되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해 준다. 그 자리에서 출국금지조치가 되어 있다고 해서 경찰이나 검찰에 통보를 하지는 않는다.

명훈 아빠는 출국한 다음, 변호사를 통해서 급한 용무가 있어서 일본에 출장갔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조만간 귀국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일본 동경에 간 명훈 아빠는 식당을 하고 있는 전 사장을 만났다. 그리고 당분간 일본에 머무르면서 사업할 것을 알아보려고 왔다고 했다.

한편 명훈 엄마는 명훈 아빠가 일본으로 떠난 다음, 혼자서 회사 일도 챙겨야 했고, 명훈 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명훈 엄마는 명훈의 강간사건을 상의하기 위해 명훈을 데리고 변호사 사무실에 갔다. 젊은 여자 변호사였다. 강 변호사는 매우 지적으로 보였다. 서른 살이 갓 넘은 것처럼 보였다.

“경찰 조사 받을 때 이렇게 하세요. 일단 모두 부인하세요. 강간한 사실 자체를 부인해요. 그리고 술에 취했지만, 완전히 술에 취해 정신을 잃었다고 하면 안 돼요. 정신은 있었다고 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 여자 말은 다 증거로 인정되고, 명훈 씨 말은 아무런 증거가 되지 못하고 다 그 여자 말대로 뒤집어쓰게 돼요.”
“그럼 어떻게 했다고 말하면 좋을까요?”

“술을 같이 마시고, 명훈씨는 모텔에 가서 쉬겠다고 했더니 그 여자가 데려다 주었고, 잠깐 같이 방에 있다가 그 여자가 가겠다고 해서 조금 더 있다 가면 좋겠다고 손을 잡았더니, 화를 내면서 뿌리치고 나갔다고 하세요. 그리고 곧 있다가 그 여자가 친구를 데리고 와서 맥주집으로 끌고 가서 난리를 치면서 부르는 대로 쓰라고 하고 사인을 했다고 해요. 아무런 증거가 없잖아요. 서로의 주장이 다르고 의심스러울 때는 피해자의 이익이 아니라, 피고인의 이익으로 재판하는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근데 사실은 제가 침대에 눕히고, 치마를 걷어 올리고 팬티까지 내렸어요. 그리고 하려다가 말았는데요. 새빨갛게 거짓말해도 괜찮을까요?”
“그거 본 사람은 없잖아요? 방에 CCTV도 없었잖아요? 그 여자가 휴대폰으로 녹음한 것도 아닐것이고, 각서는 어디까지나 두 여자가 강압적으로 협박하고 겁을 주어서 사인한 거라고 하면 돼요. 증거재판주의잖아요? 증거재판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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