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청계산에 올라갔다. 비가 많이 내린 뒤라 산은 온통 질퍽했다. 마른 땅을 걸어 올라가는 것과 많이 달랐다. 축축하게 젖은 땅을 걸으면 또 다른 촉감이 느껴진다. 특히 요새는 도심지에서 모두 아스팔트길이라 젖은 진흙땅을 밟아보기가 어렵다. 산에서 그런 촉감을 느껴보니 아주 좋았다.
산 위에 올라가니 뿌연 안개가 나무들 사이 사이에 들어와 있었다. 안개를 통해 사물을 바라본다는 것은 또 다른 경험이다. 안개는 나와 나무 사이에 약간의 여백을 남겨 두고 있었다. 습기찬 숲 속에서 느끼는 또 다른 정감이다. 산 위에서는 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날씨에도 불구하고 산행을 하고 있었다. 나는 산 정상 부근에서 바위에 앉아 숲을 바라보고 있었다. 까치 몇 마리가 가지에 앉아 울고 있다. 지저거리고 있다. 반가운 손님이 오려나 보다. 까치 소리는 생각보다 컸다. 그 작은 몸에서 어떻게 저렇게 커다란 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 그리고 바람 소리를 들었다. 바람은 특이한 소리를 낸다. 바람 소리는 나뭇잎이 흔들거리는 소리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산에서는 침묵하라. 묵언하라. 소리를 내지 말라. 존재의 소리 이외에는 아무 소리도 내지 말라. 덧없는 소리를 자제하라. 나는 까치소리와 바람소리에 몰두하고 있었다. 의미없는 사람의 소리는 몹시 거슬렸다. 이곳은 자연이다. 인간세계가 아니다. 그러니 객인 사람은 주인인 자연 앞에서 조용히 있어야 마땅하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도 사람 사이에는 무언가 통한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무언가 서로를 연결시켜 주는 끈이 있다. 그 끈은 바람과 까치를 통해 전해진다. 사랑을 믿고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자연은 사랑을 배신하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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