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자기에게 꼭 맞는 일이 있다. 그건 타고난 성격 탓도 있지만, 살아가면서 형성된 습관이나 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아침에 일어나 조용히 책상에 앉아 책을 읽었다. 요새 공부하고 있는 세법에 관한 책이다. 그동안 법인세법을 읽었고, 이제는 소득세법을 읽고 있다. 책을 읽고 있으면, 옛날 고시공부를 할 때 생각이 난다. 그리고 조용히 책에 빠져 있으면 다른 잡념도 없어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그래서 공부는 내게 딱 맞는 일이다. 

 

어제 저녁에 한우리테니스회에서 연말 테니스행사를 한다고 해서 6시에 코트로 나갔다. 8명 정도가 나왔다. 자꾸 회원이 줄어들어 걱정이다. 좋은 코트를 놔두고 왜들 열심히 나오지 않는지 모르겠다. 날씨는 생각보다 테니스 치기에 좋았다. 가만히 있으면 춥지만 조금만 뛰면 전혀 춥지 않다. 그게 운동이다. 난타를 치고, 게임을 했다.

 

중간에 고회장집에서 오뎅을 끓여가지고 왔다. 사모님이 오뎅을 아주 잘 끓이는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설명을 들어보니 그냥 물에다 오뎅을 넣어 끓이면 되는 게 아니었다. 먼저 이것 저것 넣어 국물을 만든 다음 오뎅을 넣어 다시 끓여야 제 맛이 나는 것이다. 또 청양고추도 몇개 넣으면 매콤한 맛이 더해진다고 한다.

 

다시 테니스를 치는데 하늘에서 시루떡 가루 같은 눈이 떨어졌다. 테니스장의 수은등에 비취진 가느다란 눈발이 마음을 감동시키고 있었다. 상일동 역 재래시장에 가서 군고구마를 사려고 했는데, 예전에 팔던 두 곳에서 모두 장비를 치워버리고 이제는 더 이상 안 판다고 했다. 별로 사는 사람이 없어 그런 모양이다.

 

옛 향수가 나는 군고구마를 이제는 구경하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 다른 곳으로 가서 결국 사왔다. 맛이 있었다. 따뜻한 군고구마는 찐 고구마와는 또 맛이 다르다. 우유와 함께 먹으면 정말 제 맛이다. 외국에 아무리 돌아다녀도 그런 군고구마를 못보았다.

 

요새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정말 세상 살기가 어렵다. 돈벌기도 어렵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보면 사업을 하다가 망한 사람들이 많다. 조용히 월급생활이나 하든가, 가만히 있으면 손해는 보지 않는데, 공연히 다른 분야에 손을 댔다가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변호사가 돈을 벌어 무슨 사업에 올인을 했다가 집도 날리고 형편이 어려워졌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타산지석이다.  

 

사업소득과 근로소득의 차이가 거기에 있다. 사업은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적 활동이다. 이와 같은 사업의 독립성은 결국 사업을 하는 사람의 계산과 위험에 의거한 행위(Handeln auf eigene Rechnung und Gefahr)를 의미한다.

 

자기 자신의 '계산과 위험'에 의거한다는 뜻은, 사회적 활동의 내용과 태양을 본인이 스스로 결정하고, 그와 같은 활동의 성과를 본인이 향수함과 아울러 그 위험부담도 스스로 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독립성은 사업자가 아닌 근로자가 비독립성, 종속성을 갖는 것과 대비된다. 근로자는 하나의 기업, 사업자에 소속되어 장소 방법 및 시간에 관하여 사업자의 지시나 감독에 따를 의무를 지고 있어 비독립적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근로자의 노무의 제공은 타인의 계산과 위험하에 행하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근로자가 아닌 사업자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일이 자신의 계산과 위험하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달아야 한다. 아무도 그 성패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 오로지 사업자 개인이 혼자서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그리고 사업하다 망해도 주변에서는 아무도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혼자 돈을 벌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망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업에서 성공해서 돈을 벌면 나눠주는 것이 아니고, 결국 혼자 이익을 보고 혼자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업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그 사업으로 인해 보게 될 이익의 규모가 아니라, 잘 안됐을 때 어느 정도 망할 것이냐 하는 문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사업을 하면 그로 인해 벌어들일 돈만 생각한다. 그리고 돈 벌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미처 생각하지 못 한다.

 

그러나 그런 사업으로 돈을 쉽게 벌 수 있다면 왜 세상의 다른 사람들이 그 사업을 하지 않고 있을까? 또 그런 사업을 했던 수 많은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지 못했을까? 하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신 없는 사업에 손을 대서,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날리고, 집까지 담보 잡혀 경매로 날라가게 된다. 가족들도 함께 망한다.

 

적극적인 자세로 사업을 하더라도 이런 상황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심사숙고하라. 그리고 세상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라. 이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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