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에 해인사 길상암과 원당암에 있었다. 고시공부를 하던 때였다.

 

그러니까 1976년의 일이다. 벌써 30년이 지났다. 문득 세월의 빠름을 느껴본다. 그때의 추억으로 인해 나는 지금도 겨울이면 길상암에서 맞던 차가운 겨울바람을 떠올리고, 여름이면 원당암에서 밤에 듣던 계곡의 물소리가 귓전을 울리고 있다. 

 

길상암에서 맞은 겨울 밤들. 삭풍이 몰아치던 겨울이었다. 밖이 너무 추워 감히 나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방안에 틀어밖여 책만 보고 있을 때였다. 그때는 에너지가 많을 나이였다. 방안에 있으면 몹시 답답했을 때였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밥을 단체로 먹고, 책을 보고, 또 쉬다가 점심때가 되면 모여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또 책을 본다. 저녁밥을 먹고 나서 또 책을 본다. 그러다가 지치면 잠에 든다.

 

그때는 겨울에 암자에 있으니 목욕을 할 수가 없었다. 아침에 세수만 간단히 하는 것으로 한달을 지냈다. 그래도 별로 불편한 것을 못 느꼈다. 목욕을 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 오히려 편하게 느껴졌다. 그게 환경에 적응하는 것인 모양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이었지만, 크게 지루하지 않았다. 시험이라는 목표가 있었고, 동료들이 옆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당면의 목표가 뚜렷하지 않고, 함께 목표를 향하는 동료가 없는 상황에서 혼자 계획을 세우고, 생활을 바로 잡아가면서 오래 간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때로는 지치고, 권태로움을 느낀다. 그리고 매일 되풀이되는 똑 같은 생활을 일정한 강도로 유지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일탈한다. 권태로움을 이기지 못한다. 새로움을 향해 일상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이러다가는 커다란 문제가 생긴다. 사람은 역시 살던 대로 조용하게 사는게 편한 일이다. 새로운 환경을 만들면 좋은 점도 있지만, 그로 인해 겪는 불편과 고통이 적지 않다.

 

가끔 부족한 것이 없는 여건에 있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 돈은 많이 벌었는데 어쩔 줄 모르고 살아간다. 하루 하루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매일 저녁 사람들을 만나 식사를 하고 술에 취하고, 노래방에 가는 게 고작이다. 집에 들어와서는 TV를 보거나 인터넷을 하는 것이 일과의 전부다.

 

그러면서 삶에 회의를 느끼고, 권태로움 때문에 지겨워 하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때는 안절부절하는 인생이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오후 5시에 부동산회의를 했다. 이대표가 많은 자료를 가지고 왔다. 함께 연구할 일이 많다.

 

저녁에 방송국에 갔다가 일을 보고 돌아오다가, 노량진수산시장에 들렀다. 해삼을 1만원, 멍게를 3천원, 굴을 3천원어치 샀다. 회를 썰어놓은 것이 1만5천원이다. 합계 3만천원이다.

 

수산시장에 손님이 별로 없었다. 한산한 느낌었다.

 

주식은 폭락했다고 한다. 한없이 올라가다가 추락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또 많은 개미투자자들이 손해를 보게 될 것을 생각하면, 복잡한 세상사에서 게임법칙을 모르고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딱한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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