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가을사랑

 


계곡길을 따라 걸어가는 건 작은 행복이었다. 모든 나무들이 이제는 완전히 정장을 했다. 나무 전체가 파란잎으로 둘러쌓였다.

 

산에 가서 나무들을 자세히 보면, 계절에 따라 너무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늦은 가을에 아름다운 단풍으로 물들어 있는 은은한 모습, 그건 하나의 예술일 수 있고, 허무와 슬픔을 경험하게 해준다.

 

겨울에 잎새 하나 남아 있지 않고 완전히 벌거벗은 모습. 그건 우리도 언젠가 저렇게 모두 떠나고 외롭게 남아 있을 것이라는 자연의 철학을 보여준다.

 

긴긴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면, 꽃이 피고 새 잎이나온다.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 주는 시간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온 세계가 파란색깔에 뒤덮이는가 싶게 만든다.

 

이런 계절의 변화를 산 속에 들어가 나무 가까이서 바라보고 느끼는 건 건강하고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만의 특권이다.  

 

햇볕을 많이 쐬지 않고 오랜 시간 길을 걸을 수 있었다. 계곡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맑게 들리고 있었다. 맑은 물 속에는 작은 고기들도 보였다.


북한산 대남문에서 북한산성매표소로 가는 5.5킬로미터의 계곡길을 걸었다. 모든 마음을 비우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걸었다. 눈에는 파란잎들만 들어오고, 귀에는 물소리만 들렸다.


작은 활자만 보다가, 컴퓨터 글씨만 보다가 눈을 나뭇잎이나 가지, 바위, 하늘을 보는데 집중했다. 세상이 넓게 보였다. 보이지 않는 세상의 이치와 원리가 자연과 더불어 크게 보이고 있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다. 구기동 매표소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관악산을 가려고 했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대남문까지 올라가는 데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약간 힘이 들었다. 그래도 쉬지 않고 끝까지 올라갔다. 

 

이제 마음껏 우거진 숲을 보면서, 어느 곳에서 읽었던 달과 별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달과 별은 서로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서로가 보완하는 입장에서 오래 오래 관계가 유지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관계가 흔들리면, 그건 불행일 수 있다.   


산행을 마치고 북한산성매표소 입구에 있는 가게에서 생맥주와 팥빙수를 먹었다. 시원했다. 버스를 타고 구파발까지 와서 3호선 전철을 탔다. 더운 날씨에는 버스나 택시보다 전철을 타니 넓고 시원해서 좋았다.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승객들도 많지 않았다.


저녁 무렵에 수동면사무소 부근으로 갔다. 운수농장 주인을 만났다. 개를 80여마리나 키우고 있었다. 개들이 좁은 사육장에 있는 모습이 무척 불쌍해 보였다. 주인은 그 집에서 선대로부터 150년 동안이나 살아왔다고 한다. 미사리 둑방을 거쳐서 돌아왔다.

 

명일동 주양쇼핑 부근에 쪼끼쪼끼 생맥주집이 있다. 항상 손님이 많은 곳이다. 더군다나 가게 앞에 테이블이 여러 개 있어 시원한 저녁이면 그곳에 앉아 생맥주를 마시는 기분이 보통이 아니다. 나도 그곳에 앉아 생맥주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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