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에서부터 비가 많이 내렸다. 도시 전체가 비에 젖어 축축하다. 거대한 사우나탕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회색 건물에도 빗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삶의 고단한 흔적들이 빗물에 씻겨 떠내려가고 있었다. 빌딩 곳곳에 켜있는 전등불이 마치 퇴근시간인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고 있었다.


점심 식사 후에 하얏트호텔로 갔다. 호텔에서 차를 기다리면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았다. 하얏트호텔 현관에서 바로 앞에 있는 몇 그루 나무들을 보았다. 참 운치 있게 제대로 가꾸어 놓았다. 커다란 나무들이 앞을 가리고 있었다. 아주 아늑한 모습이다. 웬지 가정집 정원처럼 느껴졌다. 건너편 남산에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남동에서 회의를 2시간 정도 했다. 다시 하얏트호텔로 돌아와 혼자서 커피를 마셨다. 낮시간이라 그런지 손님들이 별로 없다. 한산한 분위기다. 옆 테이블에서는 외국 사람 혼자서 간단한 식사를 시켜 혼자 먹고 있었다. 그 모습에는 진한 외로움이 배어 있었다. 아무리 국제화 시대라고 하더라도 외국인에게는 나그네의 형상이 보여진다. 그가 외로움을 내면의 힘으로 극복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피상적인 관찰은 아직도 그렇게 보인다.

 

창가에 있는 무대 위에 피아노와 첼로가 놓여 있었다. 연주하지 않는 상태에서 적막에 젖어있는 악기들, 음을 내지 않는 정지된 상태의 모습은, 사랑이 없는 단절이었다. 악기는 음을 내야 그 존재이유가 있다. 음을 내지 않고 있는 악기는 그야말로 하나의 물체에 불과했다. 그곳에서 어떤 느낌도 찾을 수 없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사랑의 빛을 발하지 못하는 존재는 그런 침묵이다. 나는 저녁 시간 어떤 피아니스트와 첼로스트가 연주복을 입고 나타나서 아름다운 곡을 연주하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따뜻한 커피를 음미했다. 남산 아래로 보이는 서울의 풍경이 뿌옇게 나타났다. 빗속에서도 파란 잎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폭우가 쏟아졌다. 전국이 물난리다. 웬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지, 장마도 금년에는 예년에 비해 꽤 길다. 빨리 장마가 끝나고 해가 나야 할텐 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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