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욕망(Love & Desire)

사랑은 모든 것을 움직인다.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사랑처럼 위대한 힘을 가진 존재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을 동경하며, 소중한 가치로 결코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욕망은 삶의 원동력이다. 욕망의 방향은 사방으로 뻗쳐 있으며 무한궤도를 달리고 있다. 생을 마칠 때까지 사람들은 욕망의 노예가 되어 지배를 받으며 굴종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에서 욕망에 따르는 것인데 종국에 가서는 수단이었던 욕망이 목적 자체가 되고, 수단에 불과한 욕망이 주인을 파멸시키고 만다.

사람들은 누구나 날 때부터 욕망을 지니고 태어난다. 그 무엇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욕심 때문에 태어날 때 두 주먹을 꼭 쥐고 새끼 사자가 포효하듯이 앙~하고 힘찬 울음을 떠뜨린다.

그 울움소리를 듣고 사람들은 그 아이가 세상에서 제 것을 제대로 찾아먹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 예측한다. 제대로 울지도 않고 주먹도 편 채로 세상에 나오면 힘든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을 하게 된다.

그 어린아이가 가졌던 본능적인 욕심은 지능이 더해지면서 폭넓은 욕망으로 바뀌게 되며, 점차 발전하면서 탐욕이 된다. 이처럼 욕망은 기본적인 동물적 본능을 바탕으로 지식과 지혜로 인해 시야가 넓어지면서 체계적인 단계로 나아간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절로 터득하는 것이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괴물이다. 삶을 의미있게 만들어주는 추진력이 되면서도, 삶을 송두리째 뿌리 뽑아버리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랑은 전혀 다르다. 태어날 때 어린아이는 단지 욕망만을 가지고 있을 뿐 사랑을 알지 못한다. 사랑은 자연적으로 부여되는 선물이 아니다. 그 사랑은 누군가가 가르쳐 주어야 하며, 경험을 통해 학습하지 않으면 얻어지지 않는다.

어린아이는 어머니의 젖을 먹는 것에서부터 사랑을 배운다. 어머니가 몸으로 실천하는 사랑을 보고 배우며, 자신의 것으로 머리 속에 저장해 놓는다. 시간이 가면서 그 아이는 사랑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서 이성과의 사랑도 알게 되고, 세상의 많은 동물과 식물, 추상적인 가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과 열정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포용력도 갖추게 된다.

사랑의 본질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태생적인 환경으로 인해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는 불행하게도 사랑을 모르며 사랑을 배우지 못하게 된다.

사랑이란 매우 특수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장과정에서 서서히 단계적으로 체험하지 않으면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다. 어릴 때의 사랑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집중적으로 사랑의 특강을 들었다고 해서 사랑이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옛날 장자는 제자들에게 “돈과 명예를 쫓더라도 거기에 그치거나 머물지 말라. 계속해서 진리를 향해 더 나아가야 한다.”고 가르쳤다. 공부를 해서 높은 관직에 올랐거나, 사업을 해서 돈을 벌었다고 교만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남 보다 조금 더 배우고, 조금 높은 위치에 올라갔다고, 돈이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잘난 체 하며, 스스로의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지 않고 말초적인 향락에 빠지거나 명품만을 추구하면서 물질적 충족만을 얻으려고 한다.

몇십억 원이나 하는 고급 주택에 살고, 고급 외제차에 고급 명품과 보석 등으로 치장하면서도 속은 공허하고, 황폐한 상태에서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 돈의 노예가 되어, 끊임 없이 더 돈을 모아 부의 종이 되어 굴종하고 있다. 돈을 잃으면 자신의 목숨도 잃게 되는 지경이 된다.

자식들이 가장 중요한 우상이 되어 일류 대학에 가야 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야 하고, 출세를 하지 않으면 심한 패배감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 조직에서 출세를 하지 못하면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장자는 그런 사람들의 그런 자족감과 교만함을 매미나 뱁새의 생각과 다름 없다고 평가했다.

장자의 지론은 사람은 어느 위치에 있던지간에 더욱 부지런히 힘쓰고, 무엇이 잘 안 된다고 해서 낙담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분수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현상에 대해 일희일비할 일도 아니다.

그래서 장자는, “至人은 무엇에도 기댈 일이 없고, 神人은 공을 내세울 일이 없으며, 聖人은 이름을 내세울 일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살면서 황폐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귀담아 들을 말이다.

행욕경(行欲經)에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세상에는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의 종류가 열 가지가 있다.

그중 최하 수준은, 법에 맞지 않고 도의에 어긋나게 재물을 구한 뒤에는 스스로도 안온하지 않고, 부모 처자 노비 하인들도 안온하게 하지 않으며, 하늘에 올라 즐거움을 얻고 즐거움의 과보를 받아 하늘에 나서 장수하게 하는 사문과 범지도 공양하지 않는 경우다. 쉽게 풀어보면 돈을 벌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번 다음에는 주변 사람들을 위해 전혀 쓰지 않고 혼자만 쌓아두고 있다가 죽는 경우가 가장 악한 일이라는 뜻이다.

가장 높고 묘한 수준은, 법과 도의에 맞게 재물을 구한 뒤에 능히 스스로도 안온하고 또 부모 처자 노비 하인들도 안온하게 하며, 하늘에 올라 즐거움을 얻고 즐거움의 과보를 받아 하늘에 나서 장수하게 하는 사문과 범지도 공양하는 것이다.

재물을 얻은 뒤에도 물들지 않고 집착하지 않아 묶이지 않고 얽매이지 않으며, 얽매이지 않은 뒤에는 그 물들어 집착함의 재환을 보아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고서 사용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법과 도덕에 어긋남이 없이 열심히 노력해서 재물을 얻은 다음에 부모 형제들과 나누어 쓰고, 좋은 일을 위해 널리 베풀게 되면 복도 짓는 것이 되면서 덕이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가? 과연 돈을 벌고 출세하는 데 정당한 과정을 밟고 있는가? 아니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법과 도덕을 무시하고 욕심을 부리면서 부당한 부를 축적하고 남을 짓밟고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부와 명예를 얻은 다음, 그것이 오로지 자신의 노력만에 의한 결과라고 잘못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을 돌보지 않고, 죽을 때까지 혼자, 그리고 가족들과 잘 먹고 잘 살려고 탐욕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것이 악을 쌓고 덕을 베풀지 못하며 결국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사랑과 욕망의 조화는 인생에 있어서 살아가는 목적을 분명히 함으로써 ‘목적이 이끄는 삶’의 방향을 정하고,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짧은 시간, 제한된 에너지를 가지고 그야말로 인간답게,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능력도 갖추고 그로 인해 얻어지는 과실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면서 사랑을 느끼고 사랑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게 최선의 가치고, 삶의 의미라고 믿는다.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린도전서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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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욕망(Love & Desire)

사랑은 모든 것을 움직인다.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사랑처럼 위대한 힘을 가진 존재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을 동경하며, 소중한 가치로 결코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욕망은 삶의 원동력이다. 욕망의 방향은 사방으로 뻗쳐 있으며 무한궤도를 달리고 있다. 생을 마칠 때까지 사람들은 욕망의 노예가 되어 지배를 받으며 굴종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에서 욕망에 따르는 것인데 종국에 가서는 수단이었던 욕망이 목적 자체가 되고, 수단에 불과한 욕망이 주인을 파멸시키고 만다.

사람들은 누구나 날 때부터 욕망을 지니고 태어난다. 그 무엇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욕심 때문에 태어날 때 두 주먹을 꼭 쥐고 새끼 사자가 포효하듯이 앙~하고 힘찬 울음을 떠뜨린다.

그 울움소리를 듣고 사람들은 그 아이가 세상에서 제 것을 제대로 찾아먹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 예측한다. 제대로 울지도 않고 주먹도 편 채로 세상에 나오면 힘든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을 하게 된다.

그 어린아이가 가졌던 본능적인 욕심은 지능이 더해지면서 폭넓은 욕망으로 바뀌게 되며, 점차 발전하면서 탐욕이 된다. 이처럼 욕망은 기본적인 동물적 본능을 바탕으로 지식과 지혜로 인해 시야가 넓어지면서 체계적인 단계로 나아간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절로 터득하는 것이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괴물이다. 삶을 의미있게 만들어주는 추진력이 되면서도, 삶을 송두리째 뿌리 뽑아버리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랑은 전혀 다르다. 태어날 때 어린아이는 단지 욕망만을 가지고 있을 뿐 사랑을 알지 못한다. 사랑은 자연적으로 부여되는 선물이 아니다. 그 사랑은 누군가가 가르쳐 주어야 하며, 경험을 통해 학습하지 않으면 얻어지지 않는다.

어린 아이는 어머니의 젖을 먹는 것에서부터 사랑을 배운다. 어머니가 몸으로 실천하는 사랑을 보고 배우며, 자신의 것으로 머리 속에 저장해 놓는다. 시간이 가면서 그 아이는 사랑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서 이성과의 사랑도 알게 되고, 세상의 많은 동물과 식물, 추상적인 가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과 열정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포용력도 갖추게 된다.

사랑의 본질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태생적인 환경으로 인해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는 불행하게도 사랑을 모르며 사랑을 배우지 못하게 된다.

사랑이란 매우 특수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장과정에서 서서히 단계적으로 체험하지 않으면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다. 어릴 때의 사랑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집중적으로 사랑의 특강을 들었다고 해서 사랑이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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