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언어

언어는 자신의 사고와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그런데 이러한 언어의 작용은 개체의 의도에 따라 왜곡된다. 굳이 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하려고 하지 않아도, 언어는 불완전하다. 행복을 표현하지 않고, 늘 불행만을 표출하려고 한다.

그리고 행복에는 적게 말하고, 불행에는 크게 말한다. 그것은 내면에 이미 행복보다 불행해질 것이라는 패배주의가 잠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의 생활과 달라서 사랑의 표현에는 이런 방식이 그대로 통용되어서는 안 된다. 사랑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생존에 있어서 필요조건은 아닐 지 모른다.

오히려 충분조건에 가까울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랑에 있어서는 언어의 작용이 일상과 달리 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이어야 하며, 자신을 벗어나 또 다른 존재에 대한 의도로 진행되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충족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랑의 관계는 그릇되게도 일련의 긴 불평에 국한된 것처럼 보인다. 불행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것이 무분별한 것이라면, 행복의 표현을 망가뜨리는 것 또한 죄스러운 일이다.

자아는 상처를 받을 때라야만 말을 한다. 내가 충족되었을 때, 또는 그랬다고 기억될 때 언어는 소심해 보인다. 나는 언어 밖으로, 다시 말해 일반적인 것. 시시한 것 밖으로 이송된다.

“견디기 힘든 만남이 기쁨 때문에 이루어지며, 그리하여 때로 인간이 무의 상태로 환원될 때, 이것이 바로 내가 탈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탈혼은 사람들이 말로는 할 수 없는 기쁨이다.”>
-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지음, 88쪽에서 -

인생에 대해 불평을 말하지 마라.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 대해 불평을 할 권리는 없다. 불평은 매우 무책임한 것에서 나온다. 자신의 인생이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 없이 시작되었고, 그 이후의 인생은 오직 자신의 의지에만 의지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절대로 불평을 할 수 없다.

사랑이 이루어지고, 계속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은 모두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있다. 사랑의 관계에 대해 불평하지 마라. 그것은 사랑에 대한 모욕이 되기 때문이다.

<작은 그 입술보다 더 미소가 맘에 들어
밤이 새 아침 해가 밝아도 니 얼굴이 떠오른다
지금 내 곁에 있는 너 믿어지지가 않아
내 사랑 내곁에 함께 해줄 너를 또 나 안아본다>
- 이승철, 너에게 물들어 간다, 가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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