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상(虛 像)
빗방울 소리가 들리네요
왠지 가슴은 답답하고
낙엽이 날려도
바람이 불어와도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상처, 진한 상처뿐
아무 것도 없어요
한 때 미쳤었지요
강변에서
코스모스를 따라 걸으며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던
그 따스함과 푸근함
멍하니 바라보던 애틋함
저 혼자 깊어가던
강물 위에 뿌렸던 뜨거운 눈물
서로가 똑 같았어요
가을을 정지시키고
떨리는 손으로
허공을 향해
내일을 꿈꾸었던
낯선 시간의 허상
그 안에서 잉태했던
우리들의 작은 꽃잎들
너무 아파 몸서리쳤지요
나무들이 신음하고
들풀은 짓밟혀도
잔인한 운명에 맞선 채
쓰러져가는 탑 앞에서
언젠가 다시 만난다는
간절한 소망을 새겨요
그 몹쓸 정 때문에
슬픔은 아픔을 머금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