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판중심주의와 피고인의 방어전략
가을사랑
“공판중심주의가 시행되면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요?”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것은 더 이상 증거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피고인에게는 어떤 점이 유리하고, 검사가 증거서류를 분리해서 제출하면 재판이 지연되고 변호사 비용을 많이 부담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요?”
최근 공판중심주의와 관련하여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건 당사자들로부터 위와 같은 질문들을 받고 있습니다. 대법원에서는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기로 방침을 세웠고, 일선 법원에서도 종전과 다른 방식으로 형사재판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검찰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증거서류를 분리제출하기로 하였습니다. 갑작스러운 재판진행방식의 변화 때문에 사건 당사자들은 몹시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입니다.
간단히 말씀드려서 공판중심주의라 함은, 형사사건에서 법원의 유죄 또는 무죄에 대한 심증형성과 양형에 대한 판단을 공개된 법정에서의 심리결과에 중점을 두고 한다는 원칙을 말합니다. 종래에는 대부분의 형사사건에 있어서 검찰이나 경찰에서 피의자 또는 참고인들을 상대로 조사한 내용을 기재한 조서를 중심으로 재판을 했던 것에 대한 반성적 고려에서 나온 재판진행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검사가 법정에서 수사기록을 제출하면서 증거목록을 제시하면 피고인측에서 증거능력을 인정하거나 불인정한 다음, 불인정된 증거자료에 대해 증거조사를 하는 방식으로 운영했습니다. 이러한 공판과정에서의 내용을 공판조서로 작성해서 심리가 끝난 다음에 판사실에서 수사기록과 공판기록을 토대로 유무죄를 판단하고 형량을 결정했습니다.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수사과정에서 밀실수사를 받았다, 자백을 강요받았다. 참고인들도 진술을 강요받았다, 조서내용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는 등의 문제를 제기해 왔습니다. 왜냐하면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에 피고인이 자백한 것으로 되어 있으면 법정에서 자백을 번복하여 무죄를 다투어도 검찰의 자백조서가 상당한 증명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무죄판결을 받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재판부가 많은 사건을 동시에 심리하다 보니 개별사건의 심리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기 어려워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판사 앞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밝히기 위한 진술을 할 충분한 기회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증인들에 대한 신문도 준비된 신문사항에 기초해서 간단히 문답을 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탄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불만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공판중심주의는 조서재판의 폐해를 막기 위해서 법정에서 검사와 피고인이 구두주의와 직접주의에 의해 증인신문을 하고 기타 증거를 현출시켜 유무죄를 다투도록 하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심리하여 사건에 관한 결론을 내림으로써 형사사법에 대한 시민참여 통제시스템을 구현하겠다는 취지입니다.
공판중심주의가 제대로 운영되면, 검사는 공소장만 제출하고 증거와 수사기록은 분리해서 제출하게 될 것입니다. 검사는 기소요지를 진술하고, 피고인은 모두진술을 한 다음, 피고인신문을 하고 각자 증거를 제출하고 증거조사를 하게 됩니다. 수사기관이 작성한 조서는 증명력이 상당히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법정에서의 진술이 가장 중요시되고, 서류증거는 부차적인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공개된 법정에서 직접 증인으로 출석해서 명확한 진술을 하는 방식으로 주장사실을 입증해야 합니다. 검사의 구형에 관한 의견진술이나 변호인의 변론도 서면으로 대체하지 않고 상세하게 해야 합니다.
검찰에서 증거서류를 분리해서 제출하게 되면 피고인의 방어권보장을 위해서는 매우 불리한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피고인이나 변호인의 입장에서는 종래와 같은 방식으로 검사가 수사한 수사기록을 참고로 하여 반대되는 증인신문을 할 것이 아니고, 적극적으로 피고인을 위한 증인이나 증거자료를 찾아 제출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종래와 같이 증인신문의 방식을 수사기록을 참고로 해서 ‘예’, ‘아니오’ 라는 식의 답변을 요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건에 관한 적극적인 진술을 요구하는 방식을 택해야 할 것입니다. 변론방식도 간단히 변론을 하고 추후에 서면으로 변론요지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법정에서 직접 구술로 상세하게 공소사실에 관한 사실적 측면, 증거에 관한 의견, 법률적 의견, 정상관계에 관한 제반 사항을 변론해야 할 것입니다. 공판조서의 중요성이 매우 놓아지기 때문에 공판조서가 정확하게 기재되는가에 대한 관심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법정에서 검사나 피고인측에 유리한 증인의 증언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므로 증인신문을 기술적으로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검찰에서는 공판중심주의의 정착과정에서 위증이 증가할 것으로 보고, 위증사범의 구속영장 청구기준을 완화하고, 약식기소 대신 정식재판을 받도록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러한 검찰의 태도 때문에 앞으로는 피고인측에 유리한 증인들이 법정에 나가는 것을 기피함으로써 방어에 어려움이 예상되기도 합니다.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증인에게 유리한 진술을 해달라는 취지로 허위증언을 교사해서는 안 됩니다. 대법원 판례도 형사피고인이 자신의 사건에 관하여 증인에게 위증을 교사하면 위증교사범이 성립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결국 공판중심주의가 제대로 시행되면 피고인은 검찰 수사내용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변호인의 도움을 받아 적극적으로 검찰증인에 대한 반대신문을 해야 하고, 피고인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자료를 수집해서 법정에 현출시키고 판사 앞에서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서면으로 요약해서 써서 내는 것보다 공개된 법정에서 구술로 설명하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많으므로 효율적인 방어방법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