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사랑
강물이 은빛을 발하고 있었다. 유유히 흐르고 있는 한강을 보면서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보았다. 지금 이 시간 머리 속은 정지해 있어도, 시간은 쉬지 않고 흐르고 있을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조금씩 변해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도 약간씩 달라지고 있을 것이다.
올 겨울 전혀 얼지 않았다는 한강물이 새삼스럽게 깊어 보였다. 한남대교를 건너면서 유난히 서쪽에서 비춰오는 태양이 따사롭게 느껴졌다. 택시는 국립극장 입구에서 멈췄다. 참 오랜만에 왔다. 남산타워쪽으로 걸어올라갔다.
바람이 가끔 불어왔다. 2월의 바람은 그 촉감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가슴 속에 넣어두고 싶은 바람의 숨결을 느끼면서 나는 겨울이 떠나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잎이 모두 떨어져 있는 상태의 나무들이 웬지 외로워 보였다. 나무들 사이가 몹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무들은 겨울 때문에 발가벗져지고, 그 부끄러움을 타고 있는 것 같았다. 완전히 알몸으로 다가오고 있는 나무들에게서 나는 생명의 강인함을 엿볼 수 있었다. 나무들은 보이지 않는 뿌리의 힘을 믿고 있었다. 얼마나 깊이 자리를 잡고 있는지 나무들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뿌리는 아무도 모르게 대지에 터잡아 나무의 생명을 지탱해 주는 힘이었다. 생의 원천이었다. 뿌리에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나는 포기했다. 보이지 않아도 믿을 수 있다는 것이 위대한 믿음이라고 믿었다.
계속해서 오르막길을 걸으면서 나는 점점 넓어지는 시야를 확인했다. 빽빽하게 들어선 도심의 주거지들의 형태가 눈에 들어왔다.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사람들에게서는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간간히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아는 사람이라고는 없다. 서울은 그렇게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걷는 사람은 외로워 보였고, 둘이 걷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 보였다. 함께 대화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혼자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로 나뉘고 있었다. 바람에 무슨 말을 실어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 바람은 어디까지 뜻있는 말을 실어나를 수 있을까 궁금했다.
타워 부근에 가니 초상화를 그리는 사람들이 몇 사람 있었다. 얼굴에서 가장 핵심적인 특징을 찍어내서 그리는 솜씨가 대단해 보였다. 계단길을 걸어내려와 다시 북쪽 순환도로를 걸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지팡이에 의존해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얼마나 답답하고 힘이 들까?
순환도로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앉아 남산을 바라보았다. 남산은 참 아름다운 산이다. 잘 꾸며놓기도 했지만, 나무들도 예쁘고 주변 경치도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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