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re are you from? (7)
그 사람이 결혼한다고 전화가 오고 얼마 후 나는 선을 보았어요. 이민을 간다고 했는데 그때 차라리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변화를 가져보고 싶었던 거예요. 그래서 기회의 나라, 자유로운 정신을 가진 나라로 가기로 마음 먹었어요. 지금은 한국이 기회의 나라가 되었지만은요.
나는 그때 내가 하는 일이 재미있고 보람이 있었어요. 직장에서도 장래가 보장되는 위치에 있었어요. 하지만 아무런 미련 없이, 나를 슬프게 만드는 사회를 웬지 떠나고 싶었던 거예요.
결혼날짜를 잡고 있었는데, 그 사람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조금 놀랐지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그리고 얼마나 듣고 싶었던 목소리였을까요. 그 사람 첫 마디가 "왜 전화 안 했어요?' 라고 했어요. 그래서 그 사람도 나를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고 속으로 무척 고맙게 생각했어요.
그 사람 성격에 오며 가며 심심풀이로 나한테 전화할 정도로 한가한 사람이 아닌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내 마음은 감격했어요. 내가 좋아한 만큼 나를 좋아했을까 하고 그 후로도 자꾸 생각하다보니 오늘까지도 그 사람을 잊지 못한 것 같아요.
나는 그 사람에게 곧 결혼을 할 거라고 말했어요. 두 사람 사이에 한 동안 침묵이 흘렀어요. 이윽고 그 사람은 자세하게 내 결혼에 대하여 묻고, 한 열 가지 질문을 한 것 같아요.
그 사람은 내가 결혼한 다음에도 직장에 계속 다닐 거냐고 물었고, 나는 이민을 갈 것이라고 대답했어요. 그 사람은 결혼을 축하한다고 한 다음, 다시 전화를 하겠다고 하면서 무척 슬픈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어요.
그리고 그 때가 우리 두 사람 사이의 마지막 전화통화였어요. 두 사람이 지방의 어느 계곡에서 만난지 석달이 모자라는 3년이 되는 때였고요.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많이 생각했어요. 아마 우리 둘 사이는 보이지 않는 끈이 맺어져 있는가 보다고. 아마도 그것은 지구의 법칙인 남과 여의 사랑 이외에 인간과 인간의 정인 더 높은 곳의 법으로 맺어진 사이인 것이 아닌가 하고요.
외로운 사람은 그 외로움 때문에 강인해지도 하는 것 같아요. 나는 외국에서 살면서도 그 사람과 그때 나누었던 높은 이상에 대해 생각하며 살았어요. 그리하여 미술가의 꿈을 이루었어요. 나는 대학원에서 현대미술을 배웠어요.
나는 한국의 얼이 담긴 작품을 주로 만들어요. 내 작품을 갤러리에 전시하고 사람들한테 묻지요. "우리는 어디서 왔을까요?" 라고요.
나는 앞으로도 더욱 많은 작품을 만들고 전시를 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한테 그 질문을 하려고 해요. 나의 뜨거운 열정과 애착을, 못다한 몸과 마음의 정열을 내 열손가락 끝에 모아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나는 오늘도 매일처럼 산에 올라가 바다가 보이는 산기슭을 헤매며 걸었어요.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오늘도 그 사람을 생각해 봐요. 마음을 다 주고도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그 시절을 생각하며 조용히 되새겨 보는 거예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나는 처음으로 그것은 사랑이었다고 말해봐요. 이제 이 편지를 띄우며 이루지 못해 슬픈 사연으로 남아있지만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고 소중한 재산이 되어 버린 그 아름다운 추억의 장을 봉하려고 해요.
어떤 사람들은 나와 같은 사랑을 일년에 몇 번씩 하면서 나에게 무엇이 그렇게 대단하냐고 물을지 몰라요. 그렇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호수에 투영되는 물체의 선명도가 호수의 깊이에 따라 다르듯이,사랑의 가치도 다 다르다고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산새들이 나무가지에 앉아 지저기고 있었어요. 그중 한 마리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어요. “어디에서 오셨어요?' 라고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했어요. ”내 보고픈 이들이 살고 있는 나라/ 내 두고 온 첫사랑이 그리운 나라/ 내 영혼이 달려가고 싶은 나라/ 그리고 큰 이상을 품은 동쪽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왔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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