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re are you from?(6)
가을사랑
'늦은 8월의 토요일 오후 두 사람은 광화문 네거리에 있는 어떤 빵집에서 만났어요. 두 사람에게 이미 익숙해진 중앙청 앞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줄지어 있는 가로수길을 걸어 경복궁에 갔어요. 지금 생각하니 그 시절 서울 시내의 가을은 중앙청 앞에 늘어선 가로수 은행나무 단풍으로 시작했던 것같아요. 지금은 중앙청이 사라졌지만'
당시에는 제과점에서 만나서 서울 거리를 걷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어쩌면 무척 순수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지금처럼 고급스러운 호텔이나 카페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에 더욱 가슴에 남는 순수가 가능했던 것 같다. 지금도 광화문 앞길에서 맛볼 수 있는 가을단풍은 세계 어느 대도시와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경복궁 안을 산책한 후 두 사람은 경회루 앞 벤치에 앉아 연꽃이 피어있는 정원을 바라보며 이야기했어요. 나는 그때 큰꽃무니가 있는 푸른색 얇은 옷감의 투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그 치마는 허리를 꼭 쪼여서 나를 더 말라 보이게 하는 것 같았어요. 곧 연수를 시작한다는 그 사람은 더 늠름하게 보였어요.'
연꽃은 영원을 상징한다. 그 영원성은 생명이 다할 때까지 하늘과 땅에 남아 있다. 가을에 연못을 바라보면서 하늘을 본다는 것은 바로 젊은 사람들의 특권이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청춘의 아름다운 이상이다.
'그때 나는 혼잣말처럼 동해에 갔으면 좋겠다고 했고, 그 사람이 "나랑 같이 갈까요?“라고 했어요. 나는 ”그러지요.“라고 했고,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 보았어요. 그러나 두 사람은 속으로 벌써 대답하고 있었어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요. 우리는 그런 용기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동해바다를 아는가? 아침 햇살이 붉게 떠오르는 동해의 그 푸른 망망대해를 보았는가? 정동진역 앞에서 바라보던 아침해는 정말 장관이었다. 그 아침 해에는 우리의 모든 생명과 희망과 꿈이 담겨져 있었다. 밤새 기차 안에서 고생하면서 달려갔던 모든 피로는 그 태양의 웅장함 앞에서 모두 사라져 버렸던 기억이 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연수받는 사무실이 시청 옆 바로 내가 다니는 직장 근처라고 했어요. 한참 후에 우리는 경복궁을 떠났고, 그 사람은 그날 그날 영등포로 간다고 했고, 나를 서소문 쪽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 주었어요. 나는 버스를 탔고, 그 사람은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는데, 창밖을 보니 그 사람이 키가 커서 여러 사람 속에서도 금방 알아봤어요. 그 사람은 미소지으며 서 있었는데, 나는 그때 다시는 그런 배웅을 받지 못할 것같은 예감이 들었어요.'
한 편이 영화장면이다. 버스는 떠나고 한 사람은 배웅을 하고 있고, 한 사람은 버스를 따라 움직인다. 몸은 서로 멀어지고 있지만, 마음만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서로를 생각하면서 마음이 울고 있었다.
'내 천성이 외롭게 자란 탓에 수줍음을 잘 타고, 모든 일을 속으로 잘 삼키고, 감수성이 강하면서, 잘 웃었었던 것 같아요. 그 사람은 조용하고 침착하고 사려가 깊었고, 모든 일을 초월한 사람처럼 편안해 보이고, 당시의 공부하던 환경 때문인지 외로워 보이고, 우리 두 사람은 다 쑥맥이었고요. 그래서 우리는 마음이 잘 통했던 것 같아요.'
'경복궁에서 헤어진 이후 그 사람은 전화를 하지 않았어요. 아마 걸어서 오분도 안 되는 거리에서 일하면서도 그 사람은 소식이 없었어요. 나는 서서히 알기 시작했어요. 지난 일들이 꿈처럼 여겨졌지요. 그러면서 생각했어요. 그 사람이 변한 것이 아니고 사람은 자기가 속한 환경에 동화되어 간다고요. 그리고 전화만 기다리는 나의 매력과 능력에 한계가 있었지요.'
만일 그렇지 않았더라면 두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동안 근처 길에서 우연히 두번 마주쳤었지요. 한번은 잠깐 동안 커피를 마셨어요. 그리고 몇 달 후에 그 사람한테서 전화를 받았어요. 결혼을 할거라고요. 나는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축하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는 군대를 가야한다고 했어요.'
'그 사람은 두 가지 길에서 하나를 선택했던 것이지요. 인연은 멀고 현실은 가깝고. 우리는 아무도 좋아한다는 말을 한번도 한 적이 없었고, 사랑한다는 말은 너무 화려하다고 생각했으며, 더더구나 장래를 약속한 사이도 아닌데 내가 슬퍼한 이유가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나는 그슬픔이 더 억울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결혼을 한다는 말보다 이제는 그 사람을 다시 못보겠구나 하는 사실이 더 슬픈 것이었어요. 그래서 나는 그제서야 그 사람 전화 번호를 물어봤어요. 그 사람은 사무실 전화번호를 가리켜 주었어요. 나는 그 사람한테 전화를 하지 않았어요. 그냥 전화번호를 갖고 있고 싶었어요. 그 사람을 빨리 잊지 않을려고요.'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기의 극복 (0) | 2007.02.09 |
---|---|
where are you from? (7) (0) | 2007.02.05 |
누구나 외롭다 (0) | 2007.02.02 |
어려운 상황에 대한 대처방안 (0) | 2007.02.02 |
Times Square Church (0) | 2007.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