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석요구


                                                                    가을사랑


 

“여보세요. 김 갑동씨 핸드폰이지요?”

“예. 맞는데요. 어디신가요?”

 

“00검찰청 박 계장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내일 오전 10시까지 00검찰청 419호 검사실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아니, 왜 그러시지요? 무슨 일 때문에 나가야 하는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자세한 사항은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일단 나와서 조사를 받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갑동은 심한 충격을 받았다. 공무원인 갑동은 분명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업무와 관련해서 금품을 받은 것 때문에 검찰에서 소환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도대체 어떤 업자로부터 돈을 받은 것이 문제가 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무슨 문제가 있었으면 어떤 낌새라도 눈치챌 수 있었을 텐데 아무도 자신에게 연락을 해준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갑동은 조직에서 잘 나가고 있는 위치에 있었고, 인허가부서에 있었기 때문에 워낙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접대도 받고 경우에 따라서는 돈도 받아 썼기 때문에 불안했다. 뇌물죄의 공소시효는 5년부터 최장 10년까지다. 10년전에 돈을 받은 사실도 문제가 되면 처벌대상이 될 수 있다.


갑동은 갑자기 불안감에 휩쌓이게 되었고, 앞이 캄캄해졌다. 그렇다고 누구하고 상의할 성질도 아니었다. 직장의 상사에게 보고를 해야할 지도 결정하지 못했다. 분명 뇌물사건이 아닌가 싶었다. 사실 공무원을 검찰에서 오라고 할 때는 다른 사건이 있을 수 없다. 직무와 관련된 뇌물사건이 대부분이다. 그 이외에는 공무원이 다른 범죄를 저지를 일이 없다.


얼떨결에 전화를 받았지만, 상대방이 검찰청 계장이라고 하니 갑자기 주눅이 들어 구체적인 사정을 물어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는 정보라고는 몇호실과 출석일시뿐이었다. 상대방 전화번호도 물어보지 못했다. 공무원 조차 검찰청은 무서워한다. 그게 현실이다.


갑동은 사무실에 있을 기분이 아니었다. 잠시 밖에 나갔다 온다고 말해놓고 밖으로 나왔다. 커피숍에 가서 커피를 시켜놓고 계속해서 담배만 피웠다. 초조하고 두려웠다. 도대체 무슨 사건으로 조사를 하고 있는 것인가? 이미 관계자들이 갑동에게 뇌물을 주었다고 다 불어놓은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 들어갔다가 그냥 구속되고 마는 것이 아닐까? 갑동은 갑자기 들이닥친 거대한 해일과 같은 이 시련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몰랐다. 그냥 고민만 되고 세상은 까맣게 보였다. 갑자기 세상은 지옥처럼 보였고, 혼자서 망망대해에서 난파선 조각에 매달려 떠있는 처량한 신세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잘못했다가는 검찰청에 들어가서 조사를 받고 구속되어 곧 바로 구치소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러면 직장에서는 파면되고 징역을 살고 나와 실업자가 될 것이며 주변에서 부패한 공무원으로 낙인찍혀 가족들도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될 것이 아닌가? 자신의 인생은 한 순간에 끝난 것처럼 생각되었다.


당장 내일 출석을 해야 할 것인가가 고민되었다. 출석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일단 출석하지 말고 숨어 있어야 할 것인가? 공무원의 신분이라 도망가는 것도 문제였다. 무단결근으로 되면 징계를 받게 될 것이고, 검찰에서 소환을 당하게 되자 출근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하면 직장에서나 검찰에서는 당연히 죄가 있으니까 도망갔다고 생각할 것이 뻔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만일 도피하면 어디로 가서 어떻게 지내야 할 지도 막연한 일이었다. 누가 자신을 숨겨 줄 수 있는가? 그것도 하루 이틀도 아니고 최소한 몇 달은 숨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갑동은 외국으로 나가는 문제도 생각해 보았다. 마침 여권은 있었다. 그러나 유효기간이 1년 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외국에 나간다고 해도 살 방법이 문제였다. 무작정 나가서 얼마나 버틸 것인가? 더군다나 도망자의 신분이 되면 외국에서 장기체류하는 것도 어렵게 된다. 한국에서 여권무효화조치를 취하기 때문이다. 외국에서의 비자연장도 되지 않을 것이다.


갑동은 일단 사무실에 연락해서 몸이 아파 며칠간 결근을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머물면서 사태추이를 보기로 했다. 다음 날 검찰청에 들어가지 않았다. 검찰청에서는 갑동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았다. 집에는 어디 출장 갔다고 답변을 하라고 이야기해 놓았다.


갑동은 지방으로 돌아다녔다. 모텔에서 자고 낮에는 등산을 다녔다. 밤에는 주로 술을 마시면서 괴로워했다. 잠도 오지 않고 대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그러나 갑동의 이러한 태도는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우선 자신의 사건내용을 파악하고, 그에 대해 필요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충분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 급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도피한 상태에서 고민만 하고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이런 상태에서 시간만 가면 사건은 갑동에게 매우 불리하게 돌아가고 만다. 자신의 방어권행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적극적인 해명을 하지 않고 있으면 사건수사는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갑동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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