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성폭행과 소아기호증
가을사랑
피고인 A 는 9세 내지 13세 여자 어린이 12명을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피고인은 아동 성폭행 전과가 있는 사람으로서, 주로 낮에 아파트 부근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13번째 범행을 실행하려다가 잠복중인 경찰에 붙잡혔다.
이처럼 성폭행을 당한 어린 아이들은 얼마나 심한 정신적 상처를 받게 되고, 자칫 건전한 성장에 지장을 받게 된다. 자신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을 성폭행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사회적 비난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피고인의 범죄는 어떤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것일까? 원래 강간죄는 형법 제297조에 규정되어 있는 것이 기본적인 구성요건이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형법 제297조). 그리고 강간죄는 친고죄이다(형법 제306조). 즉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된다. 강간을 당한 피해자가 고소를 하지 않거나 고소를 했다가 취소하면 처벌되지 않는다.
그런데 형법은 13세 미만의 여자를 강간하거나 강제추행하는 경우에는 특별규정을 두고 있다 즉 ‘13세 미만의 부녀를 간음하거나 13세 미만의 사람에게 추행을 한 자는 제297조 내지 제300조(강간, 강제추행, 준강간, 준강제추행, 미수범)와 제301조 내지 제301조의2(강간등상해 치상, 강간등살인 치사)의 예에 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제305조).
13세 미만의 여자는 비록 성교에 동의한다고 해도 13세미만부녀간음죄로 처벌된다. 13세 미만의 여자에 대해 폭행 또는 협박으로 강간을 하면 강간죄로 처벌받지만 폭행이나 협박을 하지 않고 피해자의 동의를 얻어 성교를 해도 13세 미만의 여자아이에 대해서는 형사처벌되는 것이다.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 제8조의2는 제1항에서 13세 미만의 여자에 대하여 형법 제297조(강간)의 죄를 범한 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동법 제9조 제2항은 ‘법 제8조의 죄를 범한 자가 사람을 상해하거나 상해에 이르게 한 때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13세 미만의 여자에 대하여 강간, 강제추행, 준강간, 준강제추행, 위계 또는 위력에 의한 간음 등을 한 경우와 그 미수범의 경우 피해자를 상해하거나 상해에 이르게 한 때에는 특별히 가중처벌되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특별법에 의하여 피고인은 1심에서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항소심에서는 피고인이 소아기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참작되어 징역 15년으로 감형되었다. 소아기호증이란 어린이들과의 성적 접촉을 더 좋아하는 정신적인 질환을 의미한다. 이러한 항소심판결에 대해 검사는 부당하다고 대법원에 상고하였다. 검사의 상고이유는 피고인에게 비록 소아기호증이라는 정신적 질환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형을 감경할 수 있을 정도의 심신미약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검사의 상고를 받아들여 항소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어린이들과 성적 접촉을 더 좋아하는 소아기호증과 같은 질환이 있다는 사정은 그 자체만으로는 형의 감면사유인 심신장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범행내용을 비교적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고, 소아기호증 진단 이후 치료를 거부한 데다 범행 장소를 사전 답사하는 등 우발적 범행으로 보기 어려운 점 등을 들어 피고인의 소아기호증이 심신미약상태인지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다만 소아기호증 증상이 매우 심각해 원래 의미의 정신병이 있는 사람과 같다고 평가할 수 있거나 다른 심신장애 사유와 경합된 경우 등에는 심신장애를 인정할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하면 소아기호증 증상이 아주 심각해서 정신병자와 같은 정도의 상태가 되었거나 다른 심신장애 사유와 함께 있어서 객관적으로 심신장애상태에 있다고 보여질 경우에는 심신장애를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이다.
소아기호증이란 이른바 로리타 증후군 또는 로리타 신드롬을 말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 아이에게 사랑이나 성적 욕구를 느끼는 것을 말한다. 이런 증세가 그 정도가 심하고 반복적이며 심리적인 장애로서 인정될 때 의학적으로 질환으로 본다.
형법은 심신상실자의 경우는 책임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아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10조 제1항). 예컨대 정신분열증환자와 같은 경우에는 아예 처벌하지 못한다. 대신 치료감호처분을 할 수 있다. 정신분열증환자가 살인을 하거나 강간을 하면 형사처벌은 불가능하고 치료감호처분을 하게 된다.
그러나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10조 제2항). 이와 같이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있으나, 그 능력이 미약한 사람의 행위는 처벌하되 형을 감경하도록 한 것이다.
이 사안에서 소아기호증이라는 정신적 질환이 과연 아동에 대한 성폭행범죄에 있어서 형을 감경할 정도의 심신미약상태를 인정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핵심 쟁점이다. 심신미약상태를 인정할 것인지 여부는 의사나 심리학자와 같은 전문가의 감정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결국은 법관이 판단해야 할 법률문제에 해당한다.
판례는 형법 제10조에 규정된 심신장애의 유무 및 정도의 판단은 법률적 판단으로서 반드시 전문감정인의 의견에 기속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정신질환의 종류와 정도, 범행의 동기, 경위, 수단과 태양, 범행 전후의 피고인의 행동, 반성의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법원이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다(대판 1000. 8. 24. 99도1194).
일반적으로 경미한 뇌마비, 정신분열증세, 간질 등의 경우에 심신미약이라는 한정책임능력이 인정되고 있다. 대법원은 소아기호증이라는 질환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형의 감면사유인 심신장애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다만 그 증세가 매우 심각한 상태여서 원래 의미의 정신병이 있는 사람과 같은 정도라고 평가할 수 있거나 다른 심신장애사유와 경합된 경우에는 심신장애를 인정할 여지가 있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