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형법정주의


                                                           가을사랑

 

 


형법은 초심자에게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과목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형법교과서가 대부분 너무 어려운 한자말을 사용하고 있고, 지나치게 간단하게 설명을 해놓아 학생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또한 형법총론은 지나치게 많은 학설을 열거해 놓음으로써 그야말로 이론을 위한 이론을 정리해 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형법은 결코 어려운 과목이 아니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범죄현상을 논리적으로 규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알기 쉽게 설명하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법학은 가급적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한글을 사용하고, 쉬운 용어를 써서 사례 위주로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일반인들도 형법을 쉽게 이해하고 실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다.

 

형법을 공부할 때 처음 배우게 되는 것이 죄형법정주의이다. 죄와 형은 법에 의해 정해져야 한다는 의미다. 죄형법정주의는 범죄와 형벌, 그리고 법률의 3자관계를 의미하고 있다. 법을 공부할 때는 항상 중요한 key word를 염두에 두고 책을 읽어야 한다.


죄형법정주의란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일반인이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성문의 법률에 무엇이 범죄인지를 명확하게 규정해 놓아야 하고, 그러한 범죄에 대해 어떠한 형벌을 부과할 것인지를 형벌의 종류와 내용을 정해놓아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형벌권의 행사는 국가권력의 중요한 내용이다. 형벌권을 유효적절하게 행사하지 않고서는 국가와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 형벌권은 개인의 생명과 자유, 재산을 박탈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행사에 있어서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기본원칙을 확립해서 시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형벌권이 남용되고 개인은 자유와 권리를 박탈 당하기 때문이다.


형법은 이러한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따라 개별적인 범죄의 구성요건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고, 각 범죄에 대한 법정형을 구체적으로 정해 놓고 있다. 예컨대, 살인죄에 관하여 형법 제250조 제1항은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살인이라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그러한 살인죄에 대해서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라는 형벌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죄형법정주의는 왜 필요한 것일까? 만일 죄형법정주의가 없다고 하면, 형벌권을 집행하는 국가권력은 자기 마음대로 범죄를 규정하고 처벌할 수 있게 된다. 형법에 규정되어 있지 아니한 행위유형에 대해 새로운 처벌조항을 만들어 소급해서 처벌할 수도 있다.


또한 형벌의 종류와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해놓지 않고 있다가 처벌의 필요성이 증대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중한 형으로 처벌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행위가 범죄에 해당하는지를 알 수 없고,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지 예측할 수도 없다. 그러면 매우 불안한 지위에 있게 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제대로 보장될 수 없다.


그래서 근대형법은 최고의 기본원리로서 죄형법정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죄형법정주의는 ‘법률 없으면 범죄 없고 형벌도 없다.’는 명제로 압축된다. 즉, 범죄와 형벌은 성문의 법률에 명확하게 규정해 놓아야 처벌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죄형법정주의는 몽테스키외(Montesquieu)의 삼권분립이론과 포이에르바하(Feuerbach)의 심리적강제설에 의해 이론적 기초가 형성되었다.


죄형법정주의는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서 ① 법률주의, ② 소급효금지원칙, ③ 유추해석금지원칙, ④ 명확성원칙, ⑤ 적정성원칙 등을 포함하고 있다.


첫째, 법률주의란 범죄와 형벌은 반드시 국회에서 제정한 형식적 의미의 법률, 즉 성문법에 의해 규정되어야 한다. 법률에 의할 것을 요하므로, 법률이 아닌 하위법령인 명령이나 규칙, 조례에 의해 범죄와 형벌을 규정할 수는 없다. 또한 성문법이 아닌 관습법에 의한 처벌은 불가능하다. 관습형법에 의해 성문법에 규정되지 않은 범죄를 처벌하는 것은 금지된다.


둘째, 범죄와 형벌은 행위시에 효력이 있는 법률에 의해 범죄의 성립과 형벌의 내용이 결정되어야 한다. 행위 이후에 새로 제정되거나 변경된 법률에 의해 소급해서 처벌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셋째, 유추해석은 금지된다. 형법이 모든 사항을 완벽하게 규정할 수는 없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구성요건을 유추해석하여 처벌대상이 되는 행위와 유사한 사안에 대해 형법을 유추적용하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형법은 범죄에 대한 형벌을 부과하는 법으로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무서운 형벌로써 통제하는 것이므로 유추해석은 엄격히 금지되어야 한다.


넷째, 형벌법규는 입법단계에서 범죄의 구성요건과 형벌내용을 명확하게 규정해 놓아야 한다.


다섯째, 형벌법규는 범죄와 형벌 사이에 적정한 균형을 갖추어야 한다. 형법은 사회에서 구성원들의 공동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꼭 필요한 범위 내에서 기능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죄형법정주의는 형식화되어 개인의 인권보장에 기여할 수 없게 된다.


죄형법정주의는 점차 사회가 복잡하게 변해가고, 범죄의 양상도 갈수록 지능화, 흉악화되고 있으며, 누범과 상습범의 증가 현상 등에 대처하기 위해 탄력적으로 운용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① 법률주의에 있어서 백지형법이나 위임입법의 허용, ② 소급효금지원칙에 있어서 보안처분의 예외, 친고죄를 비친고죄로 개정하는 경우와 공소시효를 폐지하거나 연장하는 경우의 소급효 인정 문제, 판례의 변경에 따른 소급처벌 허용 문제, ③ 유추해석금지원칙에 있어서 확장해석의 허용 문제 등이다.


그러나 죄형법정주의는 민사제재가 아닌 형벌에 의한 제재로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강도가 대단히 심대하므로 그 해석에 있어서 가급적 엄격하게 적용하는 태도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형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잔인함  (0) 2007.02.27
형법규범의 성격  (0) 2007.02.24
성폭행과 무고죄  (0) 2007.02.21
아동성폭행  (0) 2007.02.20
출석요구  (0) 2007.02.1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