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사랑
1. 법인에게 범죄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통설과 판례가 법인의 범죄능력을 부정하고 있다. 타인의 사무를 처리할 의무의 주체가 법인인 경우 그 법인의 대표기관이 배임죄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한 대법원의 전원합의체판결이 있다. 대판 1984. 10. 10. 82도2595 이다.
2. 다수의견은 형법 제355조 제2항의 배임죄에 있어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할 의무의 주체가 법인이 되는 경우라도 법인은 다만 사법상의 의무주체가 될 뿐 범죄능력이 없는 것이며 그 타인의 사무는 법인을 대표하는 자연인인 대표기관의 의사결정에 따른 대표행위에 의하여 실현될 수 밖에 없어 그 대표기관은 마땅히 법인이 타인에 대하여 부담하고 있는 의무내용 대로 사무를 처리할 임무가 있다 할 것이므로 법인이 처리할 의무를 지는 타인의 사무에 관하여는 법인이 배임죄의 주체가 될 수 없고 그 법인을 대표하여 사무를 처리하는 자연인인 대표기관이 바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 즉 배임죄의 주체가 된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법인은 배임죄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법인이 처리할 의무를 지는 타인의 사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 법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연인인 대표이사가 배임죄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3. 이에 대해 대법원의 소수의견은 법인은 사법상의 의무주체가 될 뿐 범죄능력이 없다고 하나 바로 이 사법상의 의무주체가 배임죄의 주체가 되는 것이므로 이것을 떠나서 배임죄는 성립할 수 없다할 것이고 법인의 대표기관은 법인이 타인에 대하여 부담하고 있는 의무내용대로 사무를 처리할 임무가 있다는 그 임무는 법인에 대하여 부담하는 임무이지 법인의 대표기관이 직접 타인에 대하여 지고 있는 임무는 아니므로 그 임무에 위배하였다 하여 이를 타인에 대한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없다고 한다. 소수의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함으로써 성립하므로 배임죄의 주체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 또는 신분이 있는 자이다. 법령상 또는 계약상 또는 관습상 이와 같은 지위 또는 신분이 있는 자가 그 타인에 대하여 부담하고 있는 신의성실의 의무에 위배하는 것이 곧 배임죄의 본질이므로 이와 같은 지위나 신분이 없는 자는 배임죄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다시 바꾸어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배임죄는 법령이나 계약에 의하여 타인의 사무를 처리할 권한이 있는 자가 그 권한을 남용하는 것이므로 이와 같은 권한 즉 지위나 신분이 없으면 배임죄는 성립될 여지가 없다. 이 점이 배임죄의 구성요건상 특이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당원이 이와 같은 견해를 되풀이 하여 왔다.
다수의견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할 의무의 주체가 법인이 되는 경우라도 법인은 다만 사법상의 의무주체가 될 뿐 범죄능력이 없는 것이며 그 타인의 사무는 법인을 대표하는 자연인인 대표기관의 의사결정에 따른 대표행위에 의하여 실현될 수 밖에 없어 그 대표기관은 마땅히 법인이 타인에 대하여 부담하고 있는 의무의 내용대로 사무를 처리할 의무가 있다고 하나 그 입론의 근거가 박약함은 물론 배임죄의 본질에 크게 벗어나는 해석으로서 승복할 수가 없다.
우선 법인은 사법상의 의무주체가 될 뿐 법인은 범죄능력이 없다고 하나 바로 이 사법상의 의무주체가 배임죄의 주체가 되는 것이므로 이것을 떠나서 배임죄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며 다수의견이 이 점을 내세우면서도 어찌하여 사법상의 의무주체와 범죄주체를 따로 파악하려는 것인지 참으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법인에 범죄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 대표행위를 하는 대표기관을 배임죄로 다스린다는 것은 의무 없는 자를, 따라서 임무위반행위가 없는 자를 처벌하는 것이 되어 죄없는 자를 처벌하자는 것과 같은 결론이 된다. 법인에 범죄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 대표기관을 처벌한다는 것은 도시 그 입론의 근거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형벌법규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 엄계하여야 할 잘못을 범하는 것이 된다.
물론 다수의견이 법인을 대표하는 자연인인 대표기관은 마땅히 법인이 타인에 대하여 부담하고 있는 의무내용대로 사무를 처리할 임무가 있다고 하는 입론이 법인격과 법인의 의사 및 행위능력 등에 비추어 대표기관에 그 책임을 돌리려는 이론구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이와 같은 해석은 배임죄의 구성요건을 확대왜곡하는 것이며 법인이 타인에 대하여 부담하고 있는 의무내용대로 사무를 처리할 임무가 있다는 바로 그 임무는 다수의견의 표현 그대로 이는 법인에 대하여 부담하는 임무이지 법인의 대표기관이 직접 타인에 대하여 지고 있는 임무는 아니므로 그 임무에 위배하였다고 하여 이를 타인에 대한 배임죄가 성립한다고는 할 수 없다.
법률 특히 형벌법규는 엄격한 해석이 요청됨은 많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구성요건상 분명히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규정되어 있는 배임죄의 주체 즉 사법상의 의무주체가 아님을 분명히 하면서도 그 책임을 법인의 대표기관에 돌리는 것은 배임죄의 구성요건을 확대해석하는 정도를 넘어 배임죄에 관한 형법규정을 왜곡하여 죄 없는 자를 처벌하는 결과가 된다.
법인의 배임행위에 대하여 그 법인에 범죄능력이 없다하여 반드시 누가 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하여도 의문이 없을 수 없다. 법인에 범죄능력이 없으면 그것으로 그만이지 왜 꼭 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형벌의 목적은 교정에 있는 것이며 응보가 그 목적은 아니다. 배임죄는 재산죄 중에서도 특히 사법질서를 다스리는데 그 입법목적이 있는 것이며 그 사법관계는 원칙적으로 사법질서에 따라 해결되는 것이 기본원리임을 간과할 수 없다. 요즈음 흔히 말하는 소위 민사의 형사화 현상은 우리 법조인이 다 같이 자성하여야 할 당면의 문제이며 이 점에서도 다수의견과 같은 해석은 피하여야 할 것으로 법의 궁극적 목적과 법의 궁극에 있는 이상을 되새겨 배임죄에 관한 종전 대법원 견해는 변경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반대의견을 밝히는 것이다.
4. 법인의 범죄능력에 관하여 대판 1994. 2. 8. 93도1483 는 법인은 기관인 자연인을 통하여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인이 법인의 기관으로서 범죄행위를 한 경우에도 행위자인 자연인이 범죄행위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는 것이고, 다만 법률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특별히 규정하고 있는 경우에만 행위자를 벌하는 외에 법률효과가 귀속되는 법인에 대하여도 벌금형을 과할 수 있을 뿐이다라고 판시하였다. 그리고 피고인이 회사의 기관으로서 외국환관리법 제30조 제1항 제4호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고 당해 행위로 인한 대가로 수수료를 받았다면 수수료에 대한 권리가 회사에게 귀속된다고 하더라도 행위자인 피고인으로부터 수수료로 받은 외국환 등을 몰수하거나 추징할 수 있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