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사랑의 흔적[sign of autumn love]


가을사랑



10월에도 장미가 피었다. 아침 출근길에 동네에 피어있는 장미꽃을 보았다. 핑크빛, 붉은빛, 노란빛 장미꽃이 눈에 띄었다. 장미는 6월의 장미가 아니었다. 아침이슬을 맞으면서도 장미는 여전히 꿋꿋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계절은 장미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날씨가 여름과 달라지면서 장미는 새로운 변화에 적응을 못하고 있었다. 꽃의 여왕이 시들어가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시간이 지나면 여왕도 권좌를 내주어야 하는 것같다.  


나는 장미에게 가을이 왔음을 알리고 싶었다. 가을에는 국화꽃이 장미꽃을 제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가을에는 장미의 그 화려함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가을은 순수한 사랑을 의미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을은 사랑이었고, 사랑은 가을이었다. 가을 때문에 사랑은 더욱 깊어가고 있었고, 사랑 때문에 가을은 더욱 운치를 더해가고 있었다. 가을에는 눈물이 난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 때문에 가을은 더욱 정겹게 우리에게 다가오는지 모른다. 나는 장미와 가을을 떠올리면서, 그 서글픈 사랑을 저 멀리 보내고 싶었다. 사랑하면서 사랑할 수 없음에, 죽도록 사랑해야 하는데도 사랑할 수 없는 현실의 벽에 부딪인 사람들은 가을에 운다. 가을이 울게 만든다. 낙엽과 더불어 가을바람을 맞으며 울게 된다.


해가 지면서 어둠이 찾아오고,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나무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바람이 나무를 떠나지 못하는 건 사랑때문이었다. 서로를 부둥켜안고 신음소리를 내는 까닭은 서로의 운명이 닮았기 때문이었다.


바람이 불어올 때 서로는 눈을 보아야했다. 눈빛에 서로를 껴안아야 했다. 달빛은 보이지 않았지만 느티나무 아래서 서로는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람 때문에 사랑의 영원성은 더욱 공고해졌다. 사랑은 바람을 이기고 우뚝 서있었다. 지나가는 바람은 사랑의 숭고함 앞에 소리를 내지 못했다. 멀리 도시의 불빛이 사랑의 필요성의 일깨우고 있었다. 바람은 그곳으로 단숨에 날아가버렸다.


보이지 않는 실상이 사랑의 믿음이었음은 나무와 달빛 아래서 더욱 확실해졌다. 그건 운명이었다. 서로가 우연히 만나 가을바람과 느티나무와 달빛을 수놓을 수 있다는 것은 운명이 아니고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은 행복했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만큼 그들은 살아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실감할 수 있었다. 가을에 사랑이 흔적을 남기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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