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사랑
철수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원망스러웠고, 자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불행한 인생이라고 생각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철수와 같은 생각을 한다. 어떤 고난을 당하게 될 때 그 고난의 크기를 극대화한다. 물론 주관적인 입장에서다. 그래서 그 고난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두렵고 고통스럽다고 생각한다. 객관적으로 보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자신에게 고유한, 자신만이 겪어야 할 고통이기에 그렇게 다가오는 것이다.
철수의 머릿속은 이런 저런 걱정과 불안으로 터질 것만 같았다. 근심과 걱정은 사람의 피를 마르게 한다. 모든 실존의 문제는 개별성을 지닌다. 한 사람의 고통은 다른 사람이 똑 같은 정도로 느낄 수 없다. 그가 가족이라도 마찬가지다.
변호사가 아무리 애정을 가지고 변론을 한다고 해도 그는 수감자와 똑 같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단지 자신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의사가 아무리 인간적으로 치료를 한다고 해도 환자의 고통을 똑 같은 심정으로 느낄 수는 없다. 히포크라테스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목사와 같은 성직자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인간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하지만 직접 겪는 당사자와 똑 같은 심정을 가질 수는 없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이 아니고 인간이기 때문이다.
철수의 건강도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징역을 얼마나 살아야 할지 정확하게 알 수도 없고, 징역을 몇 년 살게 되면 과연 살아서 나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교도소는 그렇게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는 곳이다. 절대로 낭만적으로 생각할 곳이 아니다. 영화에서 나오는 주인공들은 일시적으로 촬영하기 위해 그곳에 들어가 푸른 수의를 입고 연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교도소에서의 생활은 하루 하루가 지옥이고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다. 군대에서 제대말년에 아무리 달력을 지우고 있어도 시간이 가지 않는 것과 똑 같다.
법무부에서 초임검사들로 하여금 구치소에서 하룻밤 자면서 수감자들의 입장을 생각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들이 하룻밤의 구치소체험에서 얻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일시적인 환경체험은 별로 효과가 없는 것이 보통이다.
고위 공직자들이 서민들의 애환을 알기 위해 재래시장에 가서 야채를 사고 떡복기를 먹어본다고 해도 그 다음 날 고급호텔에 가서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자르고 프랑스와인을 마시고 있는 한 재래시장 방문이 그의 마음을 크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구치소란 실제로 징역을 사는 사람들이 살아남느냐 죽느냐 하는 처절한 실존의 싸움을 하고 있는 전쟁터다. 단지 무기를 들지 않았고 누가 누구를 죽이는지가 불분명할 뿐이다.
수사를 받고 재판을 받는 사람들에게 가장 커다란 고통은 그 사건이 끝날 때까지 결과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사건에 대해 주관적인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해 본다. 이렇게 생각하면 엄청난 형을 받을 것 같고, 저렇게 생각하면 별 것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론이 날 때까지 불안에 떨게 된다. 그래서 구치소 안에서는 전과가 많은 사람들의 말이 권위를 가지게 된다. 수많은 수감자들의 재판상황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웬만한 사건 내용을 들으면 어느 정도 형이 선고될 지 알아맞출 수 있게 된다. 변호사 이상으로 그들의 감각적인 판단은 정확하다.
철수는 감방에서 단체생활을 하는 것에 도저히 적응을 하지 못했다. 군대를 갔다 온 사람들은 잘 안다. 아무리 편해도 단체생활은 그 자체로 고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자유를 추구하는 존재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하는 사회적 존재이면서도 개인의 자유로운 공간만큼은 혼자 보장받기를 원한다.
다른 사람을 의식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지옥이다. 천국에서도 인간은 혼자 있는 것을 원하지 않을까? 여럿이 함께 공동생활을 하는 곳이라면 천국의 의의도 반감되지 않을까? 외국 출장을 다닐 때 느꼈던 일이 있다.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공무출장의 경우 두 사람이 한 방을 쓴다. 그러면 무척 불편하다. 차라리 값싼 호텔방을 두 개 얻어 따로 따로 쓰는 것이 훨씬 낳다.
그런데 구치소에서는 한 방에 두 명이 아니라 열명이나 같이 잠을 자고 생활을 해야 한다. 물론 돈이 있거나 고위 공직자들은 독방에서 지내기도 한다. 그러나 독방은 독방대로 지옥이다. 사람이 혼자 떨어져 있으면 더욱 불안하고 입에서 혓바늘이 돋는다. 수감자가 자살을 시도하기 쉬운 곳도 독방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있으면 구치소방에서 자살하는 것이 눈에 띄어 실패로 끝나기 쉽다. 최근에 구속된 신정아 씨도 처음에는 영등포구치소에서 독방에 수감되었다가 다른 수감자와 함께 방을 쓰도록 옮겨졌다고 한다. 변양균 정책실장은 혼자 독방에 수감되어 있다.
시간이 가면서 철수는 다른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우주에서 온 외계인처럼 되었다. 자꾸 고개를 숙이게 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졌다. 자신감을 상실하면 다른 사람들의 눈빛이 무서워진다. 사람들의 눈에서 나는 광채는 살인의 마력도 지니고 있고, 천사의 미소도 지니고 있다. 철수는 마침내 우울증에 빠지고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해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로마서 7:24)]. 철수는 사망의 몸이 되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치고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아무도 그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견져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부르짖어 보아라 네게 응답할 자가 있겠느냐 거룩한 자 중에 네가 누구에게로 향하겠느냐(욥기 5:1)' 철수는 자신이 태어난 것 조차 원망하였고, 살아있는 것 자체가 지옥이었다. 욥이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고 있었던 것과 같았다.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었던가, 어찌하여 내 어미가 낳을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욥기 3:11)', '어찌하여 곤고한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번뇌한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이러한 자는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하니 그것을 구하기를 땅을 파고 숨긴 보배를 찾음보다 더하다가 무덤을 찾아 얻으면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나니...평강도 없고 안온도 없고 안식도 없고 고난만 임하였구나(욥기 3:20~22, 26)'
철수는 학교 다닐 때 모범생이었다. 시골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산골에서 농사를 조금 짓는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들이 귀한 집안에서 4대 독자로 태어났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이다. 자신이 원해서 태어나는 것도 아니다. 출생할 때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와 권리는 전혀 없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으면 경제적으로 무척 어렵다. 생산성이 낮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들을 대학교까지 보낸 부모님들의 수고와 희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부잣집에서 태어나 호강을 하면서 자란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편하게 살아간다. 부모덕에 잘 먹고 잘 살고, 훌륭한 외모와 좋은 머리, 건강을 가지고 태어난다. 귀족으로 태어나 귀족으로 살다가 죽는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건강하지 못한 부모, 경제적으로 능력없는 부모에서 태어나 갖은 고생을 하다가 결혼을 잘못해 배우자를 잘못 만나 또 고생을 한다.
자식들을 어렵게 낳아 고생하면서 키워놓으면 속을 썩이고 가출하거나 불량배가 되어 효도는 커녕 부모에게 손찌검까지 하는 불행을 겪는다. 그래서 법은 아들이 부모를 때리는 것을 엄벌하기 위해 존속폭행죄를 일반폭행죄보다 가중처벌하고 있지만 별로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매를 맞는 부모들이 아들을 쉽게 고소하지 못하고, 고소를 했다가도 곧바로 고소를 취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부모자식간의 관계이고 인지상정이다. 또 굳게 마음먹고 아들을 징역보냈다고 해도 부모마음은 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출소후에 더욱 큰일을 저지를까봐 전전긍긍하게 된다. 그런 경우에는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복이 없는 사람은 열심히 노력해서 어느 정도 살만하게 되면 갑자기 암판정을 받아 질병으로 고통을 받다가 세상을 떠난다. 그래서 세상은 무척 불공평하다.
철수는 부모님들이 고생을 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부모님 말씀을 무조건 따랐다. 학교에서 가는 수학여행도 자진해서 가지 않을 정도로 부모님들께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애썼다. 오직 공부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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