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남과 재혼녀(3)


가을사랑 



철수는 부모에게 항상 자랑스러운 아들이었고, 학교에서는 선생님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연애 한번 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을 했다. 어려운 경제사정을 감안할 때 철수가 대학교까지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그 기간동안 부모님들의 희생은 말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부모님들은 자신들이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어떤 고생을 하더라도 철수만큼은 대학교를 졸업시키려고 했다. 배우지 못한 한은 배운 사람들이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배운 사람들은 쉽게 이야기한다. 없는 형편에 왜 그렇게 힘들여 학교를 보내느냐고? 그냥 적당히 일을 하면 부모도 고생하지 않고, 본인도 기술을 배워 편하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못배운 사람은 그게 아니다. 그런 말은 자신들의 한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무책임한 말이다. 배는 고파도 옷은 못입어도 자식은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것은 그들의 가치이며 절대적인 신앙이다. 


철수는 부모님들이 고생한 덕에 대학교 졸업장을 받았고, 그 때문에 노동일을 하지 않고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다.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해서 그게 엄청난 고생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어려워도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정도의 여건이면 괜찮은 것이다. 정말 어려우면 학교는 커녕 병든 부모님들을 위해 어린 나이에 돈을 벌어 부양까지 해야 할 형편이다.

 

철수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성실했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무척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법을 위반하지 않았고, 물질적인 욕심도 크게 부리지 않고 살았다. 그는 독자로서 형제들이 없어 외롭게 지냈다. 대신 학교친구들과 잘 지냈다. 주변사람들이 그의 봉사정신과 이해심 때문에 많이 좋아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의 역경은 조강지처였던 부인이 갑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시작되었다. 결혼생활 12년 만에 아이 세 명을 남겨놓고 사랑하던 부인은 세상을 떠났다. 그이 나이 40살때였다. 지금부터 3년 전이었다. 세상을 떠날 때 부인은 37살이었다. 그는 중매로 결혼을 했고, 마음씨 착한 부인을 만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 


그는 부인 이외에 다른 여자에게는 절대로 한눈을 팔지 않았다. 오직 부인과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부인 역시 착한 사람이었다. 남편에 대해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고 시부모 잘 모시고 열심히 살았다. 모태신앙을 가졌던 부인은 교회일에도 열심이었다. 아무런 종교가 없던 남편을 시부모 반대를 무릅쓰고 교회로 인도했다.


그랬기 때문에 나이 마흔살에 부인을 잃어버리고 혼자 된 그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왜 하필 이런 일이 자기에게 닥쳤을까? 자기와 부인이 함께 착하게 열심히 살았는데 왜 고치지 못할 병에 걸려 일찍 세상을 떠나게 만들었을까? 그건 누구 책임일까? 하나님이 계시면 이런 일을 막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고 계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군다나 부인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종이었다[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나 주께서 대답지 아니하시오며 내가 섰사오나 주께서 굽어보시기만 하시나이다 주께서 돌이켜 내게 잔혹히 하시고 완력으로 나를 핍박하시오며 나를 바람 위에 들어 얹어 가게 하시며 대풍 중에 소멸케 하시나이다(욥기 30:20~22)]


도대체 알 수 없었다. 그는 부인을 따라 다니던 교회에도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그냥 불행만을 탓하고 술을 많이 마시기 시작했다. 술에 취해 시간을 보내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으로 보였다. 건강도 나빠지기 시작했다. 지방간 수치가 올라가고 고혈압이 생겼다. 위에 염증도 생겼다. 약을 먹기 시작했다. 건강에 자신을 잃어가면서 삶에 대한 의욕도 상실했다.


저녁에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엄마 없는 아이들을 보면서 공연히 울적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불쌍했지만 달리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철수는 그런 상황에서 어떤 여자를 알게 되었다. 자주 다니는 식당을 혼자 운영하고 있는 여자였다. 철수가 처음 만날 당시 32살이었던 영희라는 그 여자는 남편과 이혼하고 위자료를 받아 조그만 식당을 하고 있었다. 영희는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이혼한 남편이 키우고 있었다.


철수는 이 식당에 자주 다니면서 소주를 마셨다. 그러다가 영희와 대화가 통하기 시작했다. 영희는 성격이 사근사근해서 철수의 비위를 잘 맞춰주었다. 철수가 상처했다는 사실을 알고 더 잘해주었다. 건강 생각도 해주고, 외로움을 달래주었다. 영업이 끝나면 두 사람은 호프집으로 옮겨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정을 통하게 되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가 외로울 때 쉽게 가까워지는 법이다.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주게 된다. 잘나고 못난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함께 외로움을 나누어 떨쳐버릴 수 있는 상대가 중요하다. 철수와 영희는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아이가 생겼다. 결혼식은 올리지 않고 혼인신고만 했다. 아예 사실혼관계에서 결혼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서로가 열심히 노력하고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재혼생활은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재혼을 해서 잘 살기도 하지만, 재혼을 해서 후회하고 신세를 망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미 상처를 받았던 두 사람이 다시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만, 한번 다른 사람과 맞지 않았던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원만하게 맞추어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가 맞지 않는 점이 있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참고 살아간다. 일단 한 결혼을 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참을성있는 사람들이 이혼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데, 이혼을 했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참을성이 없는 사람들이어서 또 이혼하기가 쉬운 기질적 요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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