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남과 재혼녀(6)
가을사랑
철수는 지금 상태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중요한 것은 철수가 현재의 상황이 된 것에 대한 원인분석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일은 이미 벌어졌고, 흘러간 과거가 되었다. 다시 되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후회를 해야 아무 소용이 없다. 인과관계를 따져본들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따지고 보면 철수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잘못이다. 철수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런 고통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부모님들을 원망한다. 왜 자기를 이렇게 낳았느냐는 것이다. 남들처럼 좋은 외모에 건강하고 머리좋게 낳아주지 않고, 못생기고 병약하고 머리 나쁘게 낳았느냐는 불평과 원망을 한다. 한 평생 자신에 대해 콤플렉스를 느끼고 부모님들을 원망하고 자포자기상태에서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들이 있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자신보다 더 못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열심히 노력하여 성공하고, 부모님들의 은혜를 고맙게 여기면서 효도를 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
부부 가운데에는 평생을 살면서 배우자를 잘못 만난 것을 후회하고 탓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배우자를 다른 사람들에게 비교하여 능력이 부족하거나 성격이 나쁘다는 이유로 결혼할 때 사람을 잘못 선택한 것을 후회한다. 자식들이 커서 머리가 다 큰 상태인데도 똑 같은 후회를 하면서 상대방의 비위를 긁고 싸움을 하는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똑 같은 것이다. 비슷한 환경에서 서로 만나 결혼한 것을 가지고 혼자 잘났다고 상대방을 비판하고 결혼 자체를 후회하는 것은 잘못이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어리석음이다.
지나간 과거에 집착해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 소용없는 과거에 발목을 잡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인생이 된다. 역사는 과거의 사실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사람이 죽고 난 다음에 과거는 중요성을 가지게 될 지 몰라도 살아있는 동안은 과거보다 현재가 더 중요하다. 과거에 대해서는 할 일이 없지만, 현재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삶이란 현재의 시간과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실체를 말한다. 과거란 삶의 그림자에 불과하며, 미래란 삶의 투영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와 미래는 만질 수도 잡을 수도 없는 보이지 않는 허상이다. 오직 현재의 삶만이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믿음은 미래에 대한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과거에 대한 것은 아니다.
오직 현재에 대한 믿음만이 의미가 있다. 하나님은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계신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마태복음 6:34)'
하나님께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 뜻은 무엇일까? 내일 일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내일 일을 걱정한다고 해서 도움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일은 사람의 걱정으로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걱정을 하고 불안해 한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 일이라면, 걱정을 하는 대신 다른 일을 하라는 뜻이다. 걱정을 하는 시간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매달리라는 뜻이다. 기도를 해서 하나님께서 내일 일을 주관하게 하시고, 그때 당할 괴로움은 그때 당하는 것으로 족하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내일 일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다. 그 무엇을 해야 할 입장이라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준비하고 열심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영어 시험을 보는 시간이라면 영어문제를 열심히 푸는 것이 중요하지, 내일 볼 수학 시험에서 과락을 맞을 것인지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은 적절치 않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나님으 뜻에 따라 하고 있는 것인지를 잘 살펴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지금 이 시간 우리가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 그러한 관계가 하나님이 원하는 바람직한 관계인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은 아닌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일로부터 크고 중요한 일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조용하게 보여주려는 뜻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알려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현재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 현재의 삶에 있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는 시간이란 있을 수 없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것이라고 한 스피노자의 말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누가복음 23:46)'라고 기도하셨다. 한편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 두 사람은 못박히는 순간에도 예수님을 욕하고 있었다.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마태복음 27:42~44)'
같은 시간에 십자가에 매달려 못박히는 동일한 상황에 있는 강도는 예수님을 조롱하고 욕을 하고 있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런 시간에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고 계셨다. 죽음을 바로 앞두고 죽어가면서도 할 일은 기도였다. 이런 차이가 믿음과 불신의 차이다.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자세는 어떤 경우에나 절대로 필요하다.
마태복음을 보면 '이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마태복음 27:38, 44)'라고 되어 있다. 강도 두 사람이 못박혔는데 강도들이 예수님에 대해 비웃는 욕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 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23:33, 39~43)' 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마가복음이나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처형된 다른 강도들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두 강도는 모두 예수님을 모욕했을까? 아니면 한 사람은 회개하고 예수님께 나아갔을까?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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