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본질(2)

 

가을사랑

 

 

돈은 눈에 보인다. 권력은 손에 잡힌다. 명예는 당장 카메라의 섬광을 몸에 비치게 한다. 정욕은 일시적으로 짜릿한 충족감을 준다. 수십억을 들여 만들어놓은 호화주택은 마치 로마시대의 귀족같은 신분상승의 대리만족을 준다. 모두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고, 육체적인 감각을 자극시키고 흥미를 유발시킨다.

 

그러나 영적인 것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도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다. 더군다나 믿음이 없는 상태의 사람에게는 공허한 환상이나 거짓말로 들린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눈에 보이는 방법으로 증명하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그것은 증명이 되지 않을 뿐이다.

 

사랑이나 바람을 눈에 보이게 손에 잡히게 증명하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한 증명은 비유를 통해 간접적으로 증명하려고 시도되지만 완벽한 물질적이고 과학적인 증명을 요구하는 사람에게 그러한 증명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공연한 논란거리만 제공할 뿐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은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린도전서 2:14~16).'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서는 올바른 사람을 만들 수 없다. 아무리 많은 교육을 받고 도덕과 윤리의식으로 무장을 해도 그 사람은 어느 한 순간 모든 것을 뒤집고 배신하며 죄를 짓고 타락할 수 있다. 지금까지 많은 정치인들, 공무원, 기업인들이 그랬다. 일반사람들이 그들에게 걸었던 최소한의 기대마저 저버리고 속으로 타락했으면서 겉으로는 최고의 봉사자, 선행자로 찬사를 받고 있었던 사례가 많았다. 그게 인간이 교육이나 도덕, 노력으로 할 수 있는 한계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린도전서 2:13).

 

그리고 믿음이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는 가급적 많은 시간 기도를 하여야 한다. 기도를 통해 묵상으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기도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의와 나라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해야 한다. 그 기도는 조용히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 오랜 시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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