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에 물든 사랑
가을사랑
사랑의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아무리 깊은 밤일찌라도 그 시계는 똑딱거린다. 사랑은 영원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움직임이라면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똑 같은 방향으로 생명을 다할 때까지 진행한다. 그게 사랑이다. 사랑처럼 일정한 것은 없다. 사랑이 사랑인 것은 그 단순성과 일정한 방향성, 그리고 영원성 때문이다.
가파른 고갯길을 힘들여 걸었다. 대남문까지 이르는 북한산 등산길은 힘이 들었다. 힘이 드는 만큼 땀도 많이 흘렸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은 아니었다. 꼭 무엇을 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산이 좋아 그냥 걸었다. 가을이 좋아 그냥 산에 올랐다. 단풍이 아름다워 구경을 갔다. 북한산은 아름다운 단풍으로 치장을 하고 있었다.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는 모습으로 조용히 있었다. 손가락으로 흙 위에 사랑이라는 글씨를 쓰고 있었다. 계곡에는 물소리가 조용히 났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늦가을 햇살은 아직 따스함이 남아 있었다. 대남문을 넘으니 상황은 아주 달랐다. 해가 비취는 남쪽과 응달인 북쪽은 너무 많은 차이가 있었다. 남쪽에는 아직 나뭇잎들이 많이 있는데, 북쪽에는 나뭇잎들이 거의 다 떨어진 상태였다. 낙엽 밟히는 소리가 들렸다. 낙엽을 밟으면서 나는 가을을 느끼기도 하고, 가을을 짓밟기도 했다.
가을은 내게 사랑이기도 했지만, 미움이기도 했다. 가을과 나는 사랑와 미움의 다리를 오가고 있었다. 가을의 아름다움이 내 가슴 속에 파고 들어왔다. 사랑은 단풍잎의 고운 색깔처럼 내 가슴 속을 물들이고 있었다. 가을 때문에 내 가슴에는 봉숭아물 대신 가을물이 들어 있었다. 가을은 내게 성숙한 사랑을 일깨워주었다. 사랑의 철학을 가르쳐주었다. 가을처럼 나는 사랑을 하면서 한 평생 살고 싶었다.
하지만 가을은 미운 계절이었다. 곧 바람이 불어오면 모든 낙엽을 쓸어갈 것이었다. 나무로부터 모든 잎을 떨어뜨리고 슬픈 나목(裸木)으로 만들 것이었다. 가을은 우리의 꿈과 청춘을 완성이라는 이름으로 빼앗아가는 존재였다. 나는 그런 가을을 미워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가을을 결코 미워하지도 못하면서 나는 가을에 이끌려 북한산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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